CCTV가 방범의 필수품이 된지 오래다. 초상권·사생활 침해 논란이 여전하지만, 수많은 돌발 사건·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유효한 안전장치로 여겨져서다. 하지만 도시철도는 예외다. 노선 중 CCTV가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방범 사각지대라는 민원이 속출하는데도 계속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 도시철도에선 방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도시철도의 최대 골칫거리인 성범죄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부산 도시철도에서 179건 발생했다. 2019년(89건)에는 2017년(40건)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불법촬영은 2019년(55건)이 2017년(14건)의 약 4배에 달한다. 서면역(25건) 대연역(17건) 덕천역(10건) 등 순서로 성범죄가 많이 일어났다. 대연역과 덕천역은 2호선이고, 서면역은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그런데 2호선 전동차에는 CCTV가 없다. 3호선도 마찬가지다. 1호선에는 전체 전동차의 33%만 설치돼 있다. CCTV가 100% 설치된 곳은 4호선이 유일하다. 승객이 많이 몰리는 노선은 부산의 동서남북을 가로지르는 1~3호선이라 범죄 역시 이곳에서 다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래와 해운대 일부 지역을 운행해 1~3호선보다 승객이 적은 4호선에만 CCTV가 완비돼 있으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모순은 법리 적용 문제에서 비롯됐다. 2014년 도시철도법을 개정해 CCTV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그 전에 개통된 1~3호선은 법률 불소급 원칙에 따라 대상에서 제외했다. 1~3호선이나 4호선이나 범죄 발생 위험이 상존하는 건 같은데, 1~3호선에는 CCTV 설치 의무를 소급하지 않아 위험을 방치하는 법리 적용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법률 불소급 원칙은 신법 제정 전에 유효하게 취득한 권리나 적법하게 성립된 행위를 존중하는 법적 안전성 확보에 필요하나 절대적인 건 아니다. 법적 안전성을 해칠 우려가 없거나 공익을 위해선 불소급 원칙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도시철도 CCTV 설치가 그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철도안전법을 개정하면서 공항철도, 신분당선 등에 CCTV 설치 의무를 소급한 건 이런 법리 적용 문제를 시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22일 내년까지 광역철도를 포함한 도시철도 객실 내부에 CCTV를 설치하도록 지자체와 코레일 등 운영기관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도시철도법을 개정한지 7년이 지나도록 대다수 도시철도 노선을 CCTV 없는 방범 사각지대로 내버려둔 지자체나 이를 좌시하고 있다가 뒤늦게 개선에 나선 국토부나 이해하기 힘들긴 매한가지다. 부산의 경우 모든 도시철도에 CCTV를 설치하려면 53억 원이 든다고 한다. 한꺼번에 하려면 버겁겠지만, 시민 안전을 위해 2014년부터 연차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면 지금쯤 설치를 완료했을 수도 있다. 근본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안전 마인드의 결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