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니 수상 소식들이 심심찮게 들린다. 문학상 말이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생소한 이름의 문학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수상자는 물론이거니와 축하를 건네는 동료 문인들의 마음도 무르익은 계절만큼 부풀어 오르겠지만 한 가지 걱정을 거둘 수 없다. 문인들의 수가 늘어난 사실과 비례해서 ‘문학’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더욱 공고해질 현실에 대한 우려다.

문학이 ‘말’로써 이루어지는 영역임은 자명하다. 그러니 문학상을 받는 일은 상을 받을 만큼 말(언어)을 잘 썼다, 혹은 말을 잘 ‘꾸몄다’ 정도로 이해해야 하겠다. 말을 잘 꾸민다고 해서 굳이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쓴 글을 다시 여러 번 고쳐 쓰거나 다듬어서 작가 스스로 ‘이만하면 되었다’는 흡족한 마음이 들도록 요리조리 손을 대는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어떤 심사과정이나 경로를 거쳤든 수상자로서는 상이 주는 남다른 의미를 숙고할 것이다. ‘수상’이 이루어지는 무대는 결산과 출발의 뜻을 동시에 지닌다. 수상을 매개로 매듭짓는 각종 ‘문학농사’가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흘러왔건 상관없이 수상 행위로 말미암아 새롭게 문학을 궁리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문학이 도처에 놓인 생생한 현실을 토대로 창작한 다양한 작품들의 ‘총체’가 아닌 만큼, 문학상 또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작가에게 돌아간다는 믿음 또한 어쩌면 허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때때로 문학상 자체에서 비롯하는 억측과 비판적 시각의 범람은 마치 세시풍속처럼 기대와 피로를 안긴다. 오랜 전통과 권위를 지닌 문학상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상을 제정하더라도 취지와 목적이 오래도록 지속되어야 한다. 더러 문학상 제정의 출발이 되었던 문인의 작품성향이나 삶과 동떨어지거나 전혀 무관한 이가 수상하는 경우를 본다. 심사의 공정성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문학상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학행사를 치장하려는 요란한 요식행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주변에 글 쓰는 지인들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들에게서 각종 공모전을 비롯한 문학상에 도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이럴 때면 왜 문학을 하는지, 그리고 왜 글을 쓰는지 가끔 되묻곤 한다.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작가는 없다. 더군다나 수상이력까지 화려하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필자가 지금까지 보아온 바로는 수상이력 자체가 작가의 문학성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창작행위에 울타리를 칠 우려마저 있다.

문학상 수상이 성실한 창작 노동에 대한 금전적인 보답이나 격려의 차원을 넘어 작품세계를 한정 짓거나 포박하는 사건이 된다면, 수상작가의 참신한 글쓰기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자족하는 글쓰기를 넘어 자만하는 글쓰기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질서나 권위 같은 현세적 체제나 사고방식이 문단에 주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작가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과 ‘문학적’ 계층구별 심리가 작동하게 된다.

오로지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들도 여럿 있는 줄 안다.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남다른 고통과 쓰디쓴 외로움으로 창작의 결실을 이루고서도 독자들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작품의 산실(産室)로 걸어 들어가는 작가의 뒷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라고 해서 독자들 반응을 궁금해하지 않을 리 만무하며, 문단의 주목 여부에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까닭이 있겠는가. 시류에 일부러 의식하거나 물들지 않고, 오로지 독창적인 상상력과 문체로 이제껏 나온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글-생명을 만들겠다는 작가의 의지와 다짐이 새삼 그리운 계절이다.

참된 문학은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그리고 문학상도 중요하지만, 상 따위야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글을 쓰겠다는 마음가짐이 괜히 아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자들이 가장 쉽게 반응을 보이는 면이 문학상 수상여부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일반 독자들은 수상여부보다는 작품에 담긴 작가의 철학과 목소리에 관심을 둔다. 이는 독자들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그렇다.

거두는 계절, 가을이 더욱 깊어만 간다. 수확의 보람은 소출량만으로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거북이처럼 더디게 왔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더디게만 갈 것이지만 남모르게 영글어가는 창작의 열매가 점점 단단해지기에 애써 웃을 수 있다. 문학상은 그렇게 작가들에게 기쁨과 위안을 준다. 기쁨과 위안은 모든 글 쓰는 이들이 바랐던 꿈결에서 흘러가는 헛것, 그러니까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독 쌀쌀한 이 계절조차 건너뛴다. 꿈이 절기(節氣)를 따지지 않듯.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