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재단과 부산문화회관은 부산 문화·예술 활동의 최전선이다. 여러 장르와 부문을 아우르는 종합 거점이자,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도 가장 높은 단계에 속하는 우리 지역의 공공 예술·문화기관이다. 공적 재원으로 운영하는 공공 기관이므로 시민에 대한 책임성은 높다. 문화·예술 영역의 대표 거점인 만큼 부산을 아름답고 창의성·만족감 높은 도시로 가꿀 의무는 무겁다. 부산문화회관·부산문화재단은 활력이 넘치고 비전이 선명한 조직이어야 한다.
두 기관은 곧 새로운 수장을 뽑아야 한다. 재단과 회관 모두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와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를 앞에 두고 있다. 새 수장들이 각각 감당하고 풀어야 할 근본 과제를 중심으로 부산문화회관·부산문화재단 새 대표의 조건을 짚어본다.
부산문화재단 강동수 현 대표이사의 임기는 내년 1월 16일까지이다. 부산시 등은 새로운 대표이사를 뽑는 과정에 이미 들어섰다. 부산문화재단이 시급히 풀어야 할 핵심과제는 아주 선명하다. 섬처럼 고립된 채 활로가 막혀, 정체될 것을 강요받는 조직 구조를 크게 개선하고 구성원이 보람·비전을 공유하며 일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는 부산문화재단 안팎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자 호소다.
관찰과 의견을 종합하면, 부산문화재단은 지난 몇 년에 걸쳐 지금까지 직원 승진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인사가 적체됐으며 임금 또한 정체된 상태다. 비정상적인 정체 상태·구조를 해소해보려는 노력과 건의가 번번이 좌절된 점은 문화계에 대체로 잘 알려졌다. 활력 고갈 악순환은 예고된 일이었던 셈이다. 아무리 오래 열심히 일해도 팀장 한 번 못 하는 ‘구조’를 강요받는 공공 조직은 위태롭다. 이 문제는 부산시가 사실상 열쇠를 쥔 만큼, 이와 관련한 새 수장의 인식·진단·실행이 빨리, 가장 절실히 이뤄져야 한다.
‘정책 기능을 더욱 강화하는 것’ 또한 중대한 과제다. 부산문화재단이 부산시의 구체적 사업을 실행 또는 대행하는 기관이 되면, 부산의 문화정책은 망한다. 부산시 산하 부산연구원이 문화정책 기관이 아님은 명백하다. 민간의 활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흡수해 새로운 문화정책을 활달하게 세우고 실행하는 일은 부산문화재단 정체성의 핵심이다. 문화정책 기능을 확대하려는 문화재단의 노력은 그간 이뤄졌다. 새 수장은 이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부산문화회관은 오는 12월 중순께 새로운 수장의 임기를 시작해야 하므로 그 이전까지 신임 대표를 뽑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회관은 문제와 과제가 좀 더 복잡하고 커 보인다. 규모가 크고 구성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원을 찾아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결국, 누적돼 온 문제 한 가지와 맞닥뜨린다. 부산문화회관 노동조합(직원)과 대표이사 사이의 갈등이 꽤 오랜 기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일종의 구조 또는 상수(常數)가 된 점이다.
이 글은 ‘새 수장의 조건’을 논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갈등과 관련한 잘잘못을 따지고 가리는 다소 복잡한 일은 삼간다. 그러나 그간 관찰한 ‘현상’ 자체는 매우 뚜렷하다. 새 대표이사가 취임하면 의욕을 발휘해 새로운 일을 펼쳐 비교적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자기 역량을 내보이고 싶어 한다. 이는 자연스럽다. 노조는 그런 시도가 조합원의 노동조건이나 복지·처우에 변화나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주목하고 경계하면서 대응을 강화한다. 요구사항도 밝힌다. 이 또한 노조 본연의 일에 속하니 탓할 수 없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대체로 어떤 형태로든 충돌이 일어난다. 일단 갈등이 생기고 충돌이 발생하면, 반복되는 경향을 보인다. 양상이 격렬해지기도 한다. 상처와 앙금이 생기게 마련이다. 애초 부산시의 문화·예술 부문 재원·투자·관심 자체가 작아 운신의 폭이 좁은 점도 작용한다. 새 수장의 임기 초는 그렇게 흘러간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마저 적다 보니, 흐름을 되돌릴 계기는 잡기 힘들고 자칫하면 갈등의 무한 루프 상황에 빠진다.
부산문화회관 구성원들이 ‘우리는 시민을 위해 존재하고 활동하는 존재’라는 대의·본질·목적을 거듭 자각해야만 해결 실마리가 잡힌다고 본다. 그러므로 새 수장은 조직의 갈등을 진단·관리·개선·해결하는 역량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지역 인사냐 전국구 인물이냐’ ‘유명한 예술가이냐 극장·공연 전문가이냐’는 기준은 적어도 이번에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그런 전문가는 부산문화회관 본부장급에 위촉해 기획 실무에 집중할 수 있게 보장하면 된다. 현재 문제의 반복과 고착은 막아야 한다.
부산문화회관의 새 수장은 높은 문화 마인드를 갖고, 유연하고도 단호하게 조직 갈등에 접근해 묵은 문제를 풀고, 구성원이 성취감과 비전을 공유하게 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예술경영 역량을 갖추면 더욱 좋겠지만, 그마저도 그다음 문제다.
기획에디터 겸 기획탐사부장 bgjo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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