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 작가 파트리크 쥔스킨트가 1985년 발표한 소설 ‘향수’는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던졌다.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향수’는 독특한 내용과 형식을 선보였다. 주인공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평범한 인간과 달리 후각에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정작 자신에게서는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르누이는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가 돼 파리를 뒤흔드는 향수를 만든다.

그의 마지막 목표인 모든 사람을 매혹시키는 향수까지 제조한다. 그 향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을 희생시킨다. 이 소설은 내용뿐만 아니라 전개 방식도 흥미롭다. 작가는 그르누이가 코를 통해 세상의 냄새를 맡는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의 냄새를 묘사할 때는 그 사물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은 40여 개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적으로 2000만 권 이상 팔렸다. 또 2006년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그르누이 역으로 007시리즈에서 Q로 등장하는 영국 배우 벤 위쇼가 출연해 섬뜩한 연기를 보여준다.

향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냄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기 때문이다. 인간의 오감 중 시각과 청각은 기록과 모방, 재현이 가능하다. 반면 후각 미각 촉각은 기록과 재현이 어렵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냄새의 새로운 세상을 그르누이가 소설 속에서 가르쳐준 것이다.

냄새라는 단어에서 두 가지가 연상된다. 하나는 향수다. 나머지 하나는 향수의 대척점에 있으며, 악취로 유명한 암모니아다. 최근 암모니아가 탄소중립 시대에 새로운 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수소와 질소로 구성된 암모니아는 에너지원인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수소의 저장·운송에 가장 효율적인 물질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 암모니아가 선박연료 시장의 45%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악취의 대명사에서 탄소중립 시대의 총아가 됐으니, 이 정도면 ‘암모니아의 역설’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지난 4일 부산시가 ‘암모니아 친환경에너지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 앞으로 부산에서 암모니아와 관련한 다양한 시험과 검증을 해 부산이 암모니아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산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그르누이가 부산에 나타난다면 암모니아의 냄새를 어떻게 묘사할까.

김희국 신문국 에디터 kuki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