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위기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미 우려를 넘어 현실로 닥쳤다. 지난 20년 간 인구가 줄어든 시·군·구가 전체 66%인 151곳에 달할 정도다. 군 단위의 인구 비중만 봐도 25%에서 8%로 떨어졌다. 고령화 속에 아기울음이 끊기고 청년층 유출은 지속되는 것이 오늘날 지역의 슬픈 자화상이다. 게다가 젊은층이 급감하는 ‘소멸 고위험 지역’은 갈수록 더 확대된다는 예측이다.지방의 자립·공동체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고도 남는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처음으로 지정하고 지원책을 내놨다. 하지만 시기를 놓친 뒷북 대응이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경제 산업 과학기술 등의 각 분야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거의 교정불능 상태로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대전환이 없는 한 격차 해소와 균형발전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여기에다 수도권의 외연 확장(연담화) 현상도 두드러진다. 서울 경기의 수도권 규제로 인해 기업체 등이 세종·대전·충청 지역으로 밀려오면서 수도권 외연이 넓어진 것을 뜻한다. 2012년 세종특별시 출범 이후 충청권 일부는 인구가 늘었지만, 그 이남의 시·도는 모두 인구가 줄어들고 산업이 침체되었다. 이는 지난 20년 우리나라 광역권의 변화상을 5대(인구, 경제·혁신, 고용, 소득·재정, 인적자원) 영역별 20개 지표로 분석한 학계 연구논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국제신문 메가시티 기획시리즈인 10월 4일 자 5면 보도).

연구개발(R&D) 분야를 보면 확연하다. 대전의 R&D 인력은 2019년 기준 3만7357명에 이른다. 경기(19만 명) 서울(13만 명) 다음으로 많고, 부산(1만6507명)보다는 월등히 앞선다. 연구개발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과학기술 역량이 민간 부문은 경기도 지역에, 공공 부문은 대전 대덕국가연구단지 쪽에 집중돼 있는 영향이 크다. 지역내총생산액(GRDP) 규모도 충남이 경기·서울 등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지난 20년간 충청권이 신성장 지역으로 약진한 것을 말해준다. 역대 정부가 추진한 균형발전 정책이 결국에는 수도권 외연 확장만 초래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 세종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지난 9월 관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된 후 세종의사당 건립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엊그제 박병석 국회의장이 건립예정지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2024년 착공 2027년 완공’이란 로드맵도 나왔다. 세종의 기존 정부종합청사와 국책연구기관에 이어 입법부 기능까지 내려오는 셈이다. 우리 헌정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 여야의 유력 대선주자들은 충청권 표를 의식한 듯 세종에 대통령 집무실을 설치하겠다는 공약과 입장을 나타냈다. 행정수도 이전에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을 보는 시선과 마음은 엇갈린다. 우선은 수도권 일극체제 극복와 국가 균형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이루고, 행정 비효율 해소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다. 반면, 입법·행정과 관련 분야의 또다른 집중구조를 만들어 수도권 외연 확장이 더욱 공고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떨칠 수 없다. 공공기관 추가 지방 이전이 사실상 무산된 상황에서도 기상청과 3개 기관(한국기상산업기술원 한국임업진흥원 한국특허전략개발원)의 대전 이전은 최근 확정됐다니 그런 우려가 더 느껴진다. 세종에 조성 중인 공동캠퍼스에는 서울대도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는 부산 울산 경남 등의 광역권별 메가시티 조성으로 다극(다핵)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서울 수도권에 필적할 만한 지방 대도시권을 구축해 육성하지 않으면 수도권 쏠림 문제는 풀리지 않을 터다. 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인프라를 지방 권역에 조성하고, 지역이 자립적으로 잘 살 수 있도록 경제 재정 의료 문화 여건과 생활 환경 등을 두루 갖춰야 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전·현 정부에서 균형발전이 실패한 것은 균형발전을 단순히 행정기능 이전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경제 교육 의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실질적인 균형발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유명 대학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지방대를 지역 혁신발전의 견인차로 키우는 것이 균형발전의 핵심적 요소다. 독일 프랑스 미국 같은 선진국의 좋은 대학들이 전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점을 곱씹어 봐야 한다. 젊은 인력이 교육과 일자리를 위해 서울에 계속 몰려드는 구조로는 지방소멸을 피할 수 없다. 대기업체 등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서도 대학의 지방 분산이 필요하다.

편집국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