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한로, 상강을 지나 제 몸의 찬 물기를 다 털어내며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0월이 자신의 고독한 끝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쯤 계절과 하나된 사람의 몸 또한 아침저녁으로 움츠러지며 작아집니다. 제가 사는 마을 가까이 무학산 그림자가 내려올 시간이면 두 다리를 세워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고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찾는 생각에 골똘해집니다. 지금, 저는 마산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산사람들이 국화축제를 준비하는 시간도 이쯤입니다. 남쪽 바다 합포만의 물빛이 짙어지는 국화 향기 따라 깊어집니다. 저는 마산에서 만들어진 노래인 김재호 작사 이수인 작곡인 ‘고향의 노래’를 자주 흥얼거립니다. ‘나래 푸른 기러기 떼가 북녘으로 날아가는’ 그 시간 역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마산 국화가 유명한 것을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마산은 국내 최초로 국화의 상업 재배에 성공한 도시입니다. 1961년 마산회원구 회원동 일대에서 여섯 농가가 이룩한 도전 덕분이었습니다. 마산의 토양과 기후가 국화 재배에 알맞다고 합니다. 화훼 재배에 대한 첨단기술이 보급되면서 국화 산업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1972년에는 최초로 마산 국화 품종을 꽃의 나라 일본에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국화는 마산의 자랑입니다. 27일부터 11월 7일까지 인공섬인 마산해양신도시에서 열리는 국화축제는 마산사람들의 순례지입니다. 시민이 집마다 국화 화분에 키워 길가에 내놓는 이유 또한 그러합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오면 마산은 순식간에 국화의 도시로 변모합니다. 화분에서 피는 수많은 국화를 보면 마산의 자화상 같습니다. 미당의 국화는 친일로 지고 말았지만 마산의 국화는 오래도록 향기를 머금고 피어날 것입니다.

돌아보면 마산의 10월에는 분노하는 청춘의 함성이 있었습니다. 1979년 10월 18일 부마민주항쟁의 시간이 마산 도심과 실핏줄처럼 퍼져있던 골목 골목 붉고 뜨거운 꽃을 피웠습니다. 저도 그 시간에 마산의 도심으로 뛰어가던 대학생이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분노를 먼저 배웠던 ‘마산의 시월’이었습니다. 그날의 분노는 거룩한 애국심이었습니다. 3.15에 이어 10.18로 이어졌던 마산의 분노는 민중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박정희 유신독재가 마침표를 찍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마산과 부산의 시인이 간직한, 그날의 마음을 모아 42년 만에 부마민주항쟁 사화집이 엮어져 나왔습니다. 이 사화집이 나오는데 42년이란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부마항쟁이 국가기념일이 되고 마산과 부산에서 번갈아 가며 기념식을 가집니다. 올해 제42회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은 마산에서 열렸습니다. 어느 성악가가 식전 행사에서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시민 자리를 차지한 정치인들이 정치 잡담으로 시끌시끌한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는 후일담을 들었습니다. 그날의 주역이었던 시민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픈데 말입니다.

저는 마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소는 ‘창원시’에 있습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입니다. 창원시는 2010년 기존 마산시, 진해시와 통합해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되었습니다. 제 고향 진해는 진해구로 변했습니다. 마산 진해 창원이 새로운 창원으로 한 옷을 입었지만, 행정이 그은 금보다 사람끼리 가진 ‘동류항’이 더 깊고 강한 공감을 가지나 봅니다. 그래서 마산사람에게 마산은 여전히 마산이고 진해는 진해입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지났지만, 행정으로 묶고 나눌 수 없는 ‘정주의식’은 변하지 않나 봅니다. 마산에 새 거처를 마련하고 주소를 가지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마산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산의 중심에 ‘창동’이 있습니다. 창동에 이어 오동동과 어시장이 붙어 있다는 것이 축복 같습니다. 제 마산산책은 창동을 중심으로 어시장과 오동동 타령으로 유명한 오동동에서 이뤄집니다. 벗. 더 추워지기 전에, 국화 향기 그윽해지는 마산에 한 번 다녀가시길.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