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국무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 선언에 화답하듯 정상회담을 제의했다. 그 제안은 우리에게 다소 뜬금없었다. 종전 선언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8년이 흐른 오늘날의 남북한 사정을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었다. 종전 선언의 주체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선언의 구체성을 띤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로 생각한다. 필자는 한·미·중·러 4강의 협력을 받을 때 더 효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예기치 못한 김의 제의는 예기치 못한 위기로 돌변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다. 김의 정상회담 제의에 곧 이어 미사일 6발을 발사했고, 이어서 극초음속미사일 ‘화성-8호’를 실험 발사해 한·미·일을 포함한 세계 안보전문가 및 군 지도자들을 놀라게 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우리는 어떠한 새로운 능력에 대한 보도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 지역과 국제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어떠한 불법 미사일 발사도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 미사일은 미·중·러가 개발하고 있는 무기 체계인 극초음속미사일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종전 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북미 회담에 있어서 신뢰를 추구하는 첫 출발”이라고 했으며, “종전 선언은 결과적으로 비핵화에 신뢰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자체는 맞는 견해이지만 북한의 무분별한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을 외면하는 것으로 보여 유약한 자세이다. 비핵화의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북한은 기만 전술과 살라미 전술 등을 엮어가면서 자국의 안보와 국익만을 추구하겠다는 이기적 행동에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일방적 유화주의는 자칫하면 우리의 국가 안보 역량을 해칠 수 있다.

북한이 우리의 선언에 대해 제기할 전제 조건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먼저 북은 한미연합정규훈련을 폐기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북한 군부는 이 훈련을 북에 대한 공격형 훈련으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한미동맹을 종전협정 체결 전 폐기 선언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고 나올 것이다. 북은 미군이 보유한 전력을 두려워한다. 셋째, 일본에 있는 미군의 해·공군 후방기지 7곳을 폐쇄하거나 후퇴시키는 요구를 할 것이다 이 후방기지들은 북한과 중국을 봉쇄하고,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과 미군 기지를 전면적으로 사찰할 권리를 부여하라면서 우리의 국방 주권을 침해할 것이다. 미군의 전술핵무기를 완전히 철수했는지 또는 새로운 핵무기가 반입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다섯째, 한국의 핵심 중공업단지와 핵심적 연구단지까지 사찰할 기회를 제공하라는 요구도 예상할 수 있다. 북한은 이 지역에서 한국이 핵물질을 추출하는지 여부를 가려내려고 할 것이다 여섯째, 북한은 한국의 병력 규모를 대폭 축소하라고 할 것이다.

끝으로 북한은 2015년부터 국제 군축회의에서 군축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기 때문에 미국 및 한국과의 군축 협상을 제기할지 모른다. 이 사안은 미국의 태도에 크게 달려 변화할 수 있는 안건이다. 한마디로, 완전한 비핵화(CVID) 보장 없이 정상회담에 임할 경우 북한은 핵국가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기회만을 포착하게 될 것이다.

부산대 명예교수·한-유럽연합포럼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