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가 있어서 좋았다. 특히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육상 선수들의 질주는 참으로 볼 만했다. 경기를 관람할 때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가 있을 땐 더욱 흥미롭다. 한편으로 스포츠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이고 올림픽에는 금은동 메달이 걸려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의 실수를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축구에서 승부차기에 실패하거나 자살골을 넣으면 그 선수로서는 지옥이지만 상대방에게는 덤으로 얻는 행운인 것이다. 승부에 집착하다가 고의적인 폭행까지 등장한다. 어쨌든 이겨야하기 때문이다.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선수들의 승부에 대한 중압감은 더욱 가중된다. 이 시대에 인류가 공유할 가치를 개막식과 폐회식에서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인류의 우정을 증진하자고 열리는 스포츠 축제가 올림픽이다. 그렇지만 선수나 관객이 경쟁 팀의 불행을 기도하고, 금메달이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다면, 이런 스포츠 행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 될 것인가? 언론에서는 숙적(宿敵)이라는 표현을 쓰고, 선수들은 마치 전쟁에 임하는 자세로 경기를 한다면 서로의 감정만 악화될 것이다.

‘논어’에 선비는 타인과 경쟁하는 경기를 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그렇지만 활쏘기만큼은 흔쾌히 응한다고 한다. “군자는 승부를 다투는 일은 없으나 활쏘기 실력을 겨루는 것만큼은 피하지 않는다.” 공자는 왜 요즘으로 말하면 ‘양궁’과 같은 경기를 좋게 평가했을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상대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쏜 화살이 과녁을 명중하지 못했는데 누구를 탓할 것인가? 자기 마음이 들떠서, 또는 자세가 바르지 않아서 나온 결과이니 승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특히 활쏘기가 그렇다. 이렇게 활쏘기는 인격 수양의 한 방법으로 여겨진 때문에 공자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조선시대에는 활터에 있는 건물이나 정자를 관덕정(觀德亭)이라고 했다. 관덕정은 ‘활쏘기를 익히는 곳’이라는 뜻인데, 그 의미가 ‘예기’에 나온다. “활쏘기는 나아가고 물러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반드시 예법에 맞아야 한다. 안으로 마음이 바르고 밖으로 몸이 곧은 다음에야 활과 화살을 잡는 것이 안정되고 확고하며, 활과 화살을 잡는 것이 안정되고 확고한 다음에야 과녁에 적중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이것으로 덕행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제주시 중심에 있는 ‘관덕정’은 과거 1970년대까지는 그 도시의 랜드마크였다. 지금도 여전하고 인근에 제주목 관아가 복원돼 관덕정 일대는 조선시대 제주의 정치와 행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광지가 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에 있는 병영성이 최근에 복원되었는데 그곳을 여러 번 방문했다. 조선시대 군사요충이기도 하지만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하멜이 일했던 곳이고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이국적인 돌담은 특이하고 아름답다. 병영면은 음식으로도 유명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초등학교 건물까지 들어선 과거의 병영성 가운데가 지금은 말끔하게 정리됐고 그 자리에 활터가 자리잡았다. 임시로 지은 가건물에 현판이 걸려있어 살펴보았더니 ‘관덕정’이라고 돼 있었다.

향교로서는 드물게 국가의 보물로 지정된 건물이 있는 경주향교의 명륜당(明倫堂) 서쪽 공터에 활 쏘는 곳이 있는데, 역시‘관덕정’이라고 했다. 그 입구에 “활을 쏘는 사람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바로 세우고 활을 쏘는 것이니 활을 쏘아서 적중시키지 못하면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을 뿐”이라는 ‘맹자’의 문장을 쓴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이렇게 전국 각지의 활터에는 의례히 관덕정이라는 건물이 있다. 활쏘기는 선비들에게는 겨루는 스포츠이면서 또한 자기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활쏘기를 하면서 나아가고 물러갈 때 예법을 생각했고 바른 마음을 가지려 했고 곧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바를 정(正)자와 곧을 직(直)자의 덕행을 길러주고 그 수준을 본다는 활쏘기의 그런 정신과 전통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대선의 시즌이다. 최고의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또한 집단적 경쟁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당선을 위해서는 하지 못할 바가 없을 것이다. 당선되면 그 과정에서 있었던 무례함과 거친 언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불법적 행위마저도 대충 정당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권력 획득의 경쟁 속에서 상대방의 중대 실책을 고대하는 태도는 차라리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다. 대선은 국가의 발전과 퇴락이 달려있는 엄중한 절차이다. 그렇기에 더욱 바를 정(正)자로 그 자신의 덕을 길러온 인물, 곧을 직(直)자로 일생을 일관했던 지도자들이 인격과 정치철학, 정책을 알리며 선택을 기다리는 그런 과정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