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오랜 도반인 스님이 땀의 울력으로 가꾼 ‘나무도량’ 고성 천황산 안국사 잔디마당에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별을 보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별을 보는 일, 저에게는 유년을 지나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기도 합니다.

지나간 8월의 불볕 여름과 열대야의 밤에, 9월이 오면 그리하여 가을이 오면 윤동주 시인처럼 별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이 밤 별밭 사이로 유영하며 여름 내내 제가 그리워한 모든 것을 만날 것 같습니다. 그리운 것은 다 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별을 만난 것은 할아버지 댁에서였습니다. 그곳엔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양산군(지금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380의 1.’ 제 호적등본의 주소인 그곳은 마당이 넓은 만큼 밤이면 하늘의 별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름철 저녁에는 말린 쑥으로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그 곁에 멍석을 깔고 가족이 모두 두레 밥상에 둘러앉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신평장에라도 다녀오신 날의 저녁은 유달리 풍성했습니다. 풍성한 이유라고는 간고등어 ‘한 손’이 전부였습니다. 할머니는 간고등어 한 손 두 마리로 무슨 요술을 부리셨는지 가마솥 가득 별식을 만들어 가족 모두에게 맛있고 배부른 저녁을 선물했습니다. 그런 날은 마당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세다가, 저를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도시에 사는 아버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가을이 앞산 뒷산을 물들이면 익은 고추처럼 붉은 고추잠자리가 마당을 덮었습니다. 어린 저는 두 손을 들고 깡충깡충 열심히 뛰어도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발을 동동거렸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살 위의 막내 고모가 싸리 빗자루를 들고 와 허공을 한 번 저으면 여러 마리의 고추잠자리가 잡혔습니다. 고모는 제 양손 손가락 사이에 고추잠자리 날개를 끼워 주었습니다. 저는 고추잠자리가 달아날까 봐 벌서듯 꼼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막내 고모의 싸리 빗자루를 들고 별을 따러 다녔습니다. 별을 따서 제 두 팔 가득 안고서 신이 났습니다.

그때 저는 별과 고추잠자리를 같은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별은 제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들의 이름을 대신하는 대명사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할아버지 시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마을에 잔치까지 벌어졌지만, 밤을 밝히는 불빛에 별이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어린 저는 그렇게 별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별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빛나는 ‘항성’이어야 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별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한 거리 ‘광년’이라는 시간의 자로 재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는 제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과학적으로 먼 광년의 거리가 놓여 있었지만,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제 별들이 있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배우면서 시를 통해 별을 만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쓰는 시 속에 별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습니다. 제게 시인이 되는 일은 가슴에 별을 다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지금 고성 안국사에서 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별은 여전히 빛나지만 제 눈은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도 별을 다 헤지 못합니다. 유난히 반짝이며 찾아오는 별 몇 개를 만나도 행복합니다. 오래전 저는 제 시에 ‘별에 가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고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알았습니다. 별에는 제가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이 모여 있다는 것을. 제게 별이 빛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사랑하고 그리운 것은 모두 별에 있습니다. 그래서 별은 빛납니다. 오늘 저는 안국사 가을 밤하늘에서 그리운 것을 다 만날 것입니다. 당신의 밤하늘에도 별이 빛날 것입니다. 당신의 뜨거운 호명을 기다리며.

시인·경남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