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후보자들의 TV 토론 기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하세월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상으로는 과태료 1000만 원만 물면 후보자들이 사실상 토론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국회의원들 어느 쪽도 과태료 인상이나 벌금 부과 등 제재 강화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선관위 의뢰의 토론회 효과 조사에서 유권자의 98%는 “TV 토론이 필요하다” 하고, 절반 이상은 “횟수를 늘려야 한다”고 응답하는데도 그렇다. 선거 토론 필요성에 대한 국민 정서와 이를 담보할 수단 사이에 괴리가 큰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년 3월 대선이나 6월 지방선거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후보들의 토론회 기피는 총선이나 지방선거로 내려갈수록 심하다. “유세 때문에 시간이 없다” “토론 형식이 마음에 안든다”“격에 안 맞다” 등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내막은 사실상 같다. 진짜 실력이 들킬까 두려운 것이다. 특정 당세가 강한 곳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사실상 당선된 것이나 같은데 후보 입장에선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 적당한 사유를 둘러대거나 정 안되면 과태료만 내면 끝이다. 과태료조차 피하려고 허위사유를 꾸몄다가 현직 구청장이 임기 1년을 채 안 남기고 직을 내놓아야 했던 사건이 얼마전 부산 사상구에서 벌어진 일이다.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할 것인가 선택할 자유는 분명 존재한다. 특히 SNS가 발달하면서 신문이나 방송같은 기성 매체를 통하지 않고 후보자가 유권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 그러나 이런 수단은 후보의 일방적인 선전과 홍보일 뿐이다. 미리 준비되고 선택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선관위 혹은 기성 매체 주최의 토론회는 경쟁 상대가 있는 공개검증의 무대이다. 후보 개인의 자질, 능력, 도덕성, 현안파악과 이해정도 등이 종합적으로 드러난다. 간혹 자신이 감추고자 하는 단점이 들춰지기도 한다. 그런 자리를 피하려는 건 자격이 없음을 자인하는 것이나 같다. 물론 특별한 내공 없이 토론에만 능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유권자 판단에 맡기면 된다.

후보들의 토론 기피가 상시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자명하다. 불참으로 인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기 때문이다. 이런 구도를 방치한다면 토론회라는 형식 자체가 쓸모 없어진다. 금전적 손해든 이미지 타격이든 토론 회피가 당사자에게 치명적인 페널티로 작용할 수 있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제도 개선을 마냥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둬서도 안된다. 현역 프리미엄을 누리는 국회의원들이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법 개정을 위한 여론의 압력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선관위의 적극성이 중요하다. 각 정당에서도 유권자와의 소통없이 자리만 탐하는 사람들을 자체적으로 걸러낼 수 있게 공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