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우연은 운명을 만든다. 그 운명은 찰나의 생각에서 혹은 간단한 문구 하나에서 시작될 수 있다. 실은 툭 솟아오른 아이디어와 짧은 카피야말로 큰 전환의 핵심이다. 개인의 차원이든, 도시의 차원이든 어떤 우연이 운명을 만든다.

왜 책을 읽는가? 책읽기는 혼자 할 수 있다. 가장 고요하지만 가장 격렬한 일이다. ‘산하’의 마지막 문장 “살아 있는 사람은 일단 산을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와 같은 급소에 해당하는 문장을 만났을 때, ‘토지’에서 월선의 죽는 장면을 마주했을 때, ‘유라시아 견문’과 니체와 ‘거대한 전환’의 통찰을 접했을 때 머릿속에선 요동이 친다. 책읽기의 괴로움과 삶의 권태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책읽기는 혼자 향유할 수 있는 행위다.

책읽기는 휘발성이 약한 지식, 체계적인 지식을 집적시킨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피터 드러커는 매 년 주제를 정해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쌓여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갖추게 되었고,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식은 위안과 용기를 주고, 두려움과 불안을 완화시킨다. 그리하여 삶을 밀고나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삶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만들기도 한다. 책읽기는 잘 사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위다.

책읽기는 의무감을 충족시킨다. 책읽기는 특정한 사람들에겐 의무다. 여기에 자유의 문제가 개입한다. 자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혼자 있는 것일 수 있고, 군중들과 함께 있는 것이 자유일 때도 있다. 홀가분한 상태가 자유일 수도 있다. 의무를 떠안는 것도 자유다! 의무를 회피하는 것에는 부자연스러움과 부끄러움이 있다. 눈치 보기와 핑계가 있고, 굴욕과 구속, 껄끄러움도 있다. 책읽기는 의무를 이행하는 자유의 행위다.

책읽기는 진통제고 탈출구며, 숨어있기다. 삶이 불행하고 때로 처량하다 여겨진다면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삶의 고통은 시부저기 사라진다. 불행과 자기연민으로부터의 탈출이고, 이야기 속으로, 혹은 지적 희열 속으로 안전하게 숨는 것이다. 책읽기는 지혜롭게 삶을 우회하는 행위다.

책읽기는 기대의 분산이다. 책읽기가 습관이 되고, 시간이 쌓이면 어느 순간 다른 차원의 생각이 떠오른다. 쓰고자 하는 욕구와 삶의 전면적인 조정이 그것이다.

글쓰기와 삶의 조정을 통해 삶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삶의 기대가 한곳에 집중되면 분노 원망 절망과 대면하기 십상이다. 기대의 집중은 사람을 졸렬하게 만든다. 책읽기는 삶의 기대의 분산이고,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행위다.

책읽기는 자기만족이다. 뇌가 나일 수는 없다. 뇌는 중독과 자극, 욕망충족으로 끌고 가려는 데 반해 나는 맑은 정신, 절제, 성찰로 가고자 한다. 뇌의 작용에 저항해야 한다. 성공적인 저항에서 자기만족이 온다. 그 만족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도구화되지도 도구화하지도 않는, 자기 삶을 사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책읽기는 한 톨의 자기 원망도 없는 행위다.

책읽기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2021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부산 북구’때문이다. 한 달여 전 독서대전 담당자들과 우연히 마주앉게 되었다. 거기서 북구가 ‘Book구’가 되는 놀라운 얘기를 들었다. 탁월한 ‘개념의 전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구’가 ‘Book구’가 된 그 짧은 순간 북구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Book구에서는 맑고 밝은 희망의 냄새가 났다. 북구가 Book구가 되면서 북구는 일거에 인식의 전환을 이루었다. 어떤 우연이 운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개시장 폐쇄를 이룬 북구가 이제 반려견들도 책을 물고 다니는 Book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1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부산 북구에 유치하고,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애쓰고 있는 Book구 관계자 여러분께 고마움과 존경의 말씀을 올린다. ‘2021년 대한민국 독서대전 부산 북구’는 9월3~5일 본행사에 이어, 3~29일 ‘다시, 책 북페어’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

도서출판 함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