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외부의 위협을 받으면 ‘성’을 쌓는다. 위협의 강도와 공포에 비례해서 성은 견고해지고 높아진다. 성을 경계로 성 안의 ‘우리’는 성 밖의 ‘그들’을 적으로 규정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그들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고 ‘그들’을 포용하는 어떠한 생각이나 시도도 용인되지 않는다. 우리는 단일한 정체성 속에서 동질화되고 ‘그들’을 포용하는 어떠한 생각이나 시도도 용인되지 않는다. 오직 피아의 구분에 따른 배제의 원리가 작동되어 생사를 건 대결과 갈등을 낳는다.

한편 외부의 위협이 없으면 사람들은 ‘길’을 닦는다.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우리’는 우리와 다른 ‘그들’과 물자, 정보와 지식과 마음(문화)을 교류한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서로 교류이익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의 연결망을 구축한다. 이 교류망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어 ‘우리’의 경계를 넓히는 공존의 원리가 작동되어 협력과 평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들’이 불확실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항시 불확실한 상황과 마주한다. 이때 위협이 있다고 판단하면 견고한 ‘성’을 쌓아 생존을 지켜낼 수 있지만 항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고 또한 다양한 교류이익을 포기해야 하므로 물질적 빈곤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위협이 없다고 판단하면 ‘길’을 열어 상호 교류이익을 누릴 수 있지만 예상치 못한 외부 위협으로 인한 사멸의 위험성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사멸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 교류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성문’을 만들었다. 즉 성문을 닫으면 성이 구축되어 생존을 지키고 성문을 열면 길이 되어 공존을 추구한다. 이제 ‘성문’의 여닫이 문제가 ‘우리’와 ‘그들’을 나누어 적대시하는 분리선이 되거나 ‘우리’로서 함께 공존하는 포용선의 경계가 되었다.

성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 길 위에서 끊임없이 교류하는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즉 우리의 삶에 필요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배분하기 위해 우리들 간의 경쟁은 피할 수가 없다. 경쟁은 관습, 법률과 제도 등으로 형성된 특정 룰(rule) 하에서 작동된다. 이 룰을 상당한 ‘우리’의 일부가 수용하지 못하면 우리 사이에 문이 닫히면서 ‘또 다른 성’이 구축된다. 이에 따라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가 형성되고 ‘우리’ 사이에도 배제의 원리가 작동되어 우리의 경계는 분열되며 축소된다. 반면 ‘우리’ 모두가 수용하면 우리 사이에 수많은 성문들이 열리면서 ‘길’로 연결된다. 이 길을 따라 ‘우리’ 사이에 협력에 의한 공존의 원리가 작동되어 우리의 경계는 확대된다. 따라서 우리 내부의 성 구축은 위험하다. 경쟁이 생사를 걸만큼 치열한 대결 국면으로 치달아 ‘우리’ 일부가 제거되고 그에 따른 분열과 갈등 속에서 많은 것을 잃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경쟁 룰의 공정성이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 내부를 대결의 ‘성’에서 협력의 ‘길’로 인도하는 ‘열린 성문’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속해 있는 ‘우리’의 안팎에는 촘촘하게 짜여진 수많은 경계선이 있다. 이것은 내가 속해 있는 가족, 직장 뿐만아니라 정치, 경제 등 나의 일상 차원의 모든 활동에서도 존재한다. 나는 이 경계선에 서서 ‘성문’의 여닫이를 결정한다. 개인들은 자신의 욕망, 이익과 가치 등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과 의지, 지식과 정보 등을 활용해 이것을 결정할 것이다. 어떤 이는 거의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소수의 고립된 ‘우리’로 남고, 어떤 이는 거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다수와 연계된 ‘우리’로 존재한다.

그러면 ‘우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우리’ 내부의 현실을 살펴보자. 현재 정치에서 대권경쟁이 치열하다. 이것이 대선 이후에도 ‘우리’가 될 수 없는 강고한 성을 쌓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 내부의 혈연, 지연과 학연 또한 성별과 인종차이가 ‘길’의 포용성보다 ‘성’의 배제성으로 나아가는지 걱정스럽다. 북한을 민족의 경계에서 ‘우리’이지만 국가의 경계에서 생사를 겨누어야 할 ‘그들’로 규정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문을 굳게 닫고 있다. 이제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이 된 ‘우리’가 민족의 경계에서 ‘성문’을 여는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일까? 기후문제는 이제 전 인류의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의 경계에서 ‘길’을 열어 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성’을 쌓아 생존을 지키고, ‘길’을 열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우리’의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뒤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