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막 퇴원했을 무렵 “왜 아팠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폐결핵 때문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대답했는데, 그는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병은 스스로 자초하는 거라고 말했다. 그제야 나는 그 질문이 ‘어떤 병에 걸려서 아팠나’가 아니라 ‘왜 아플 때까지 몸 관리를 하지 않았나’고 묻는 것임을 알았다.

‘왜 아프냐’는 질문에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했을까. 원인이라고 부를 만한 건 무수히 많아서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끝이 없을 텐데. 결핵은 전염병이라 어디선가 감염된 거라고, 발병 시기가 사람마다 달라 역학조사가 어렵다고, 나의 생활 습관은 악화의 이유일 수는 있어도 직접적 원인은 될 수 없다고, 과학적 사실을 들먹이며 자신의 아픔에 대해 변명이라도 해야 했던 걸까.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대답이 궁색해서라기보다는, 질문 자체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질병은 조심한다고 피할 수 있는 종류의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고에 가깝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누군가도 언제든지 이러한 사고에 휘말릴 수 있다.

대신 내가 했던 건 자신의 아픔을 기록하고 나누는 일이었다. 9개월의 치료 기간 블로그에 결핵에 대한 글을 썼다. 가슴 통증과 기침 등의 증상, 처음 각혈을 했을 때 느꼈던 불안감, 병원 진료 및 입원 치료 과정, 매일 챙겨 먹어야 했던 약의 개수 등 당시의 감정과 경험을 세세하게 적었다.

처음에는 환자로서 지내는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한 개인적인 기록에 가까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하루에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결핵’이라는 키워드로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고 있었다. 가끔은 댓글로 질문이나 감상이 달리기도 했는데, 어떤 이는 글을 읽고 펑펑 울었다며 자신의 치료 경험을 공유해주기도 했다. 그런 날은 오히려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각자의 아픔을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제외한다면, 나는 댓글로 달리는 대부분의 질문에 ‘전문의와 상담하세요’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약의 부작용이나, 내성 결핵 치료 과정 등 자신의 경험을 넘어서는 일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의견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자신의 아픈 부분에 누구보다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있어도, 혼자 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건 의사와 같은 전문가나 주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었다. 만약 환자가 계속해서 그런 요구를 받는다면,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환자가 들어야 할 말을, 받아야 할 치료를 제대로 듣지도 받지도 못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사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청년에게, 여성에게, 장애인에게, 산업재해 유가족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해결책까지 요구하는 건 너무 과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사자가 너무 많은 요구를 받는다는 건,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들이 당사자에게 무엇을 전가하고,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질문의 대상과 방향도 그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당사자에서 관계자로, ‘왜 아프냐’는 질문에서 ‘왜 아플 때까지 내버려 두었냐’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면서도 그들을 상처 입히지 않는 질문으로 사고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해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각자의 아픔을 나누는 일도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그로 인해 아픈 이들의 자리가 조금이라도 더 다정해지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서로가 되기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