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미라클’은 성공적이었다.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그 혼돈의 나라에서 한국 정부를 도왔다는 이유로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던 이들을 카불공항을 통해 무사히 우리나라로 데려왔다. 한국에 온 아프간인 조력자와 가족은 모두 390명이다. 정부는 탈레반의 보복 위험에 처했다며 도움을 요청한 이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 등을 감안해 국내 이송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두고 “국격이 높아졌다”며 극찬했다. “국격 상승의 기회”, “높아진 국격과 달라진 대한민국의 모습” 등 쏟아진 찬사에 이른바 ‘국뽕’(국가에 대한 자부심) 아니냐고 점잖게 일침을 놓을 수 있겠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물론 일본이 탈출을 희망하는 모든 이를 데려오지 못한 채 대피 작전을 끝내려 하는 상황이나, ‘미라클’ 작전에 대한 외신의 호평을 접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피말리는 비밀 작전 만큼이나 홍보 전략도 깔끔했던 덕분이지 싶다. 인도주의란 대의의 바탕엔 식민시대와 전쟁을 겪은 우리 근현대사가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건 이제부터다. 정부 말대로 도의적 책임은 이들이 제대로 정착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까지 미쳐야 하고,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과 인권 선진국으로서의 위상 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따라다닌다. 정부가 이들을 ‘난민’이 아니라 ‘특별공로자’라고 애써 강조한 이면에 난민 혐오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월남(베트남공화국) 패망 이후 18년 동안 난민수용소를 운영했던 부산의 경험을 떠올리는 이유다.

1975년 4월 월남 패망은 ‘보트 피플’을 만들었다. 사이공(현 호치민) 함락으로 철수하던 한국군이 실어온 1355명이 부산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옛 부산여고 건물에 만든 임시 체류지가 첫 난민보호소다. 보트 피플이 급증하면서 1977년 해운대구 재송동에 2000㎡ 규모의 난민보호소가 건립돼 1993년 2월까지 16년 동안 운영됐다. 모두 18년 동안 두 곳에서 2800여 명이 생활했다.

부산의 난민보호소는 사실상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계기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각별하다. 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난민을 구조하고 포용하며, 제3국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경험이다. 자원봉사 등을 통해 조금씩 전해진 그들의 삶과 문화는 우리 생활에 각인됐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당시 체제 비용은 물론 제3국 정착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책임졌고, 우리의 조력은 제한적이었다. 해운대 난민보호소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듯이 관련 서류들도 찾아보기 어렵다. 망국이란 비극적 서사의 당사자를 반공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피커’로 삼으려는 사례들만 남았다.

1970년대 후반 난민보호소 지원을 지켜봤던 해운대구청 퇴직 공무원을 수소문해 당시 상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옛 수영비행장 옆 맨 땅을 보호소 부지로 활용했지요. 사람 왕래가 드물었으니 관리하기 쉬웠겠죠. 우리 장병을 환송했던 부산항으로 들어온 보트 피플 아니었습니까. 아프간인들을 보니 낯설고 물 선 이국 땅에 발을 디딘 보트 피플의 불안한 표정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퇴직 공무원의 온정적인 이야기 만큼이나 인도주의에 바탕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때다. 넘어야 할 산은 난민 혐오다. 난민이 유입되면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써야 하고, 일자리를 위협하며, 범죄 발생 우려가 높아진다는 이유다. 2018년 예멘인들이 제주도로 몰려들었을 때 이미 한 차례 논란을 빚었다. 2015년 내전이 터진 이후 2017년 말레이시아로 옮겨간 예멘인 500여 명이 새로 취항한 말레이시아~제주 노선 여객기를 이용해 제주도로 입국, 난민 신청을 한 것이다. 당시 제주도는 30일 무비자 입국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동안 정부 내에서 우리가 데려온 아프간인들에 대한 법적 지위를 두고 입장 정리가 있었다. 외교부가 발표했던 ‘특별공로자’가 아니라 ‘특별기여자’ 신분이라고 했다. ‘특별공로자’는 국적법상 한국 국적을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이라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란다. 이들은 관련 법령 개정을 통해 장기 체류와 취업활동이 가능한 거주(F-2) 자격을 받게 된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난민은 신청·심사기간·심사절차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만, 이들은 아프간에서 한국 국익을 위해 기여한 조력자인 만큼 난민보다는 생계비·정착지원금·교육 면에서 더 많은 배려가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불비한 제도의 반증이다.

이런 일이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포용을 모토로 제도를 손질하는 것 이상으로 일상의 혐오를 씻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보트 피플을 품었던 부산에서 그 일을 시작해보자.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