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각국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올 여름 섭씨 48도를 넘는 유럽 역사상 가장 더운 폭염과 사투를 벌였고, 지난 7월 독일과 벨기에에서는 100년 만의 폭우 탓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세계 각국이 서둘러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 핵심은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다.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주요국 정상은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0)’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동원한다는 데 합의했다. EU 역시 지난 7월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점진적 축소를 통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수준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Fit for 55’를 발표하며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을 선포했다.

탄소중립경제는 그간 석유를 기반으로 하던 산업 분야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간 10억ｔ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해운산업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파도가 거세다. 대표적으로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부터 현재 운항 중인 국제해운 선박에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각국 선사들에게 친환경을 넘어 필(必)환경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실제로 세계 최대 해운사인 덴마크의 머스크(Maersk)는 2023년 석유 대신 친환경 연료인 메탄올을 사용하는 ‘탄소 중립 컨테이너선’ 3척을 투입하고, 2030년부터는 모든 선박을 탄소 중립 선박으로 발주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내 해운업계에는 어떨까. 일각에서는 글로벌 탄소중립체제로의 전환이 한진해운 파산 이후 고비를 겨우 넘긴 국내 업계에 또 다른 위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해운업의 특성상 비용에서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데 당장 탄소배출량을 줄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탄소국경세 도입이나 탄소배출권 구매 비용 상승은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국내 해운업계에 고스란히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예견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듯 국내 해운사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고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친환경 선박 도입을 앞당기고 있으며, 기업마다 보유한 친환경 선박연료 생산과 유통 역량을 상호 공유해 글로벌 탄소중립정책에 대응하고 있다. 국내 해운사들을 돕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활발하다. 지난 6월 부산신항에서 열린 ‘1만6000TEU급 한울호 출항식’에서 정부는 ‘2030년 해운산업 리더국가 도약’이라는 비전을 발표하고, 해운산업을 발전시켜 친환경 전환을 가속화하는 등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간 선박펀드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해운산업 부흥을 지원해 온 캠코 역시 국내 해운업계가 밀려오는 녹색의 거센 풍랑을 헤치고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면밀한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캠코는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적선대 유지를 위해 총 27개 해운사에 2조 원 규모 선박금융을 통해 선박 147척을 인수해 지원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캠코는 지난 6월 세계 선박금융 전문 저널 ‘마린머니(Marine Money)’로부터 ‘2020년 올해의 거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에는 ‘캠코선박펀드’ 지원 적정성 평가 기준에 국제해사기구(IMO) 환경 규제 준수 여부 등을 추가하고, 선박인수사업 시행 이후 처음으로 친환경선박인 LNG운반선을 인수함으로써 해운산업 녹색전환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캠코는 국적선사 친환경 선박(Eco-ship) 건조 확대 지원을 통해 해운과 조선산업 동반 성장에도 기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정책기관 공동 ‘선박 신조지원 프로그램’에 더해 올해부터는 ‘캠코신조펀드’를 새롭게 조성해 국내 해운기업의 친환경·고효율 신조선박 확보를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신조 지원 방식을 다각화해 국적선사의 친환경 선박 중심 보유선대 개편을 지원함으로써 환경 규제에 대한 해결책 마련에 앞장설 계획이다.

탄소 중립이라는 대전환의 갈림길에 있는 지금, 해운업계는 새로운 친환경 규제를 유연하게 수용하고, 끊임없는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캠코는 해운업계가 위기를 딛고 도약할 수 있도록 신속한 유동성 공급으로 물길을 터주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다하겠다. 해운산업이 다가올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하며, 드넓은 대양에 명실상부 해운강국(海運强國)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부활의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