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18년 산업혁명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1℃ 올랐다고 했는데, 지난 1월 1.25℃ 상승을 발표했다. 이로 인해 비상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일 자 워싱턴포스트는 지구촌 기후를 결정해온 대서양 해류의 순환이 정지할 위기에 처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현재 해류가 응급실에 들어온 환자와 같은 상태고,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임을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이후 지구촌 전체가 최악의 산불 폭염 폭우로 기후 붕괴의 도가니에 빠진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촌의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 시작이 무역이다. 지난달 14일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를 줄일 계획으로 ‘핏 포 55(Fit for 55)’를 발표했다. 여기서 2023년 준비, 2026년에 집행하는 탄소국경세(BCAM)를 구체화했다. 유럽연합 역외에서 수입되는 상품의 온실가스에 탄소세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즉 무역에 온실가스를 포함해 역내 기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이 탄소국경세를 선보이자 미국도 민주당 주도로 탄소국경세 법안을 제출했다.
이렇게 되면 중국도 조만간 탄소국경세를 수용할 것이다. 이미 2014년 11월 미국과 중국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온실가스 조항을 무역에 포함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처럼 탄소국경세는 기후위기 대응을 이유로 유럽 미국 중국 일본으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이 국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할 것이다. “탄소세를 당신의 나라에서 내거나, 아니면 우리나라에 내라.”
우리나라는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자동차 등 고탄소 산업이 당장 영향을 받는다. 연간 276만ｔ을 유럽연합에 수출해온 우리나라 철강회사들은 2026년부터 탄소 가격에 따라 유럽연합에만 영업이익(5~10%)보다 많은 매년 2000억~5000억 원을 내야 한다. 2024년부터는 미국에도 탄소세를 내야 한다. 철강업체는 경쟁력을 잃고 수출을 중단하고, 투자기관도 투자를 회수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 부산지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유럽연합과 미국이 차지하는 철강 수출액은 4억892억 달러로 전체 철강 수출의 25.7%다. 그래서 부산도 당장 문제다. 무역이 위기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곧 닥칠 무역위기에 대비하고 있을까? 대책도 없고, 피할 길만 찾는 것이 현실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27일 ‘우리나라가 유럽연합 탄소세 적용 대상에서 면제돼야 한다’는 취지의 서신을 유럽연합에 보냈다. 우리가 유럽연합처럼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실시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전경련의 요구는 거부될 것이 확실하다.
유럽의 탄소배출권거래제는 2013년 이후 기업의 온실가스 57%에 유상할당을 부과하고 있다. 2026년부터 매년 10%씩 올려 2035년에는 100% 유상할당할 계획이다. 공짜탄소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상할당 90%, 유상할당은 겨우 10%다. 그나마 그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유럽연합 기준에 한참 미달하여 그 차이만큼 탄소세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머뭇대는 사이 고탄소 산업은 견디기 힘든 생존 위기에 처할 것이다. 조만간 해당 산업과 이 산업에 종사해온 노동자들과 그 가족, 이들에 의존해온 지역경제가 위기에 빠질 것이다.
해결의 길이 있을까? 고통스럽겠지만 탄소 시대에 익숙했던 것을 전환해야 길이 열린다. 첫째, 정부가 추진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그리고 로드맵을 국제적 기준으로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탄소국경세, 사실 국제적 기준(2030년, 2010년 기준 45% 감축)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저절로 해결된다. 둘째, 정부는 그 목표와 로드맵을 산업계,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특히 목표 달성 실패 시, 발생할 위기 공유는 중요하다. 셋째, 이 목표로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과 그린뉴딜은 재설계해야 한다.
무역현안을 해결하면서 우리는 기후 대응 역량도 키울 수 있다. 이렇게 지금 정부와 산업계는 피할 길을 찾을 게 아니라 함께 살 길을 찾아야 할 때다.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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