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신을 드러낸 여성의 젖가슴이 풍만하다. 오백 아들을 먹이자면 저 정도는 되어야겠다. 제주섬 이불에서 오백의 아들이 탄생한다. 물 고인 백록담은 섬의 배꼽, 여신의 배꼽처럼 보인다. 설문대는 제주와 제주의 만물을 낳는 대모신, 섬이라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넘치는 거대한 풍요의 여신이다. 명주 백동으로 속옷을 만들어 온다면, 육지까지 닿는 다리를 만들어 주겠다. 설문대는 약속한다. 제주도의 명주를 다 모아도 한 동이 모자란다. 속옷은 만들어지지 않고, 다리는 놓이지 않는다. 모자람과 헐벗음은 결핍이 되고 좌절된 염원이 된다.
신화는 역사를 구비전승한다. 표면은 신화이나 이면은 숨겨진 역사이다. 역사 혹은 선사 시대의 인물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구전된다. 인물과 사건에 상상을 더하고 은유를 가미하고 초인적 힘을 불어넣으면 신화에 올라타게 된다. 탐라국 이전에 부족국가가 있었을 것이다. 모계추장이 다스리는 신정일치의 모계사회다. 절대권력자 설문대는 무당인 동시에 통치자, 고조선의 단군과 같은 존재다. 여성 지도자와 섬의 가장들이 모자지간 같은 유대 속에 살아간다. 어떤 이유로 평화로운 섬에 갈등이 생기고 반역이 일어난다. 아들이라 지칭되는 각 움집의 가장들 오백이 모여 소도지역인 설문대의 거처를 급습, 어머니 설문대를 살해한다.
설문대 신화의 정점은 엽기적인 식인의 카니발이다. 아들들을 위해 죽을 끊이던 설문대가 거대한 죽솥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을 아들들이 먹는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도자를 죽이고 난 후, 집단 광기는 다시 집단 공포로 옮아간다. 어머니 설문대의 신령스런 보복이 두려워 가마솥에 넣어 죽이 되도록 끓여버린다.
단군신화는 동굴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한다. 설문대신화의 공간은 섬이다. 바다 이외의 탈주로가 없다. 인간사회에는 불만과 불평이 발생한다. 결핍, 갈등, 이간질, 상반되는 여론, 소영웅주의가 발생한다. 외부와 단절된 특수사회인 섬은 내부의 분노와 광기를 어떻게 다스릴까. 관심과 에너지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식민지를 구축하고 전쟁을 불사하는 제국주의가 있다. 사역 혹은 카니발 같은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들은 사역을 통해 내부의 잉여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경우이다. 설문대의 섬은 식인의 카니발 축제를 벌인 것일까. 가뭄, 기근으로 백성이 고통받을 때 지도자를 희생양 삼던 시대가 있다. 다리 건설이 무산되었으니, 불발된 지도자의 약속은 희생의 빌미가 된다. 설문대는 죽솥에 뛰어들어 몸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오백 가장 모두의 몸이 되어, 내부 갈등을 가라앉히는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육로가 차단된 한반도 절반의 남쪽이라는 현실공간도 외부세계와 단절된 섬과 다름없다. 이 섬이 지금 패권을 두고 겨루기 시작했다. 오백 명 아들 후보들 가운데 누가 패권을 잡을까. 만물과 생명을 낳고 기르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먹이는 여성성 지도력을 기대해도 좋을까. 단군신화는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 간의 치열한 백일 전쟁의 기록으로 해석된다. 베어즈팀이 타이거즈팀을 이기고 한반도와 요동 일대 패권을 차지한다. 단군은 프로필에 웅녀 어머니의 여성성, 인내를 신화로 스토리텔링하고 지도자가 된다. 토템 부족을 정당으로 바꾸면 지금의 정치판에 유비된다.
남성중심 신화에서 여성은 젊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여신 역시 타자화 된다. 여성의 미를 위해서 신화 속 남성은 전쟁을 불사한다.
그러나 설문대 신화에서 여신은 할망으로 그려진다. 나이든 여성을 권력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젊음과 아름다움이 지나간 후의 여성의 존재를 그린다. 설문대는 지혜로운 여성의 좋은 상징이다. 그러나 오랜 부계사회 역사에서 여성 지도자는 비극의 자리에 놓인다. 모든 것을 다 주고 자기의 목숨까지 내주는 것이 어머니의 신화이다. 설문대의 실패는 신화가 되고 문학이 된다. 모든 어머니는 기꺼이 실패하는 여신이어야 할까.
예술은 역사에 신화의 옷을 입히기도 하고, 신화를 덧입은 역사의 맨살을 풀어 헤치기도 하고, 기존 신화의 어깨에 다른 상상의 날개를 달기도 한다. 노령화 사회, 은퇴한 여성은 어떤 여신이 될까. 이 시대는 어떤 신화가 될까. 어떤 음유시인이 거대하고 기이하고 아름다운 신화의 피륙을 짜낼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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