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지 76주년 되는 날이다. 2차 세계대전에 마침표를 찍었으나 그 피해가 현재까지 미치고 있다. 피폭 2·3세가 겪는 대물림 후유증이다. 40년 넘게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을 앓고 있는 한정순 씨가 대표적인 예다. 한 씨 9남매 중 3명은 일찍 사망하고 나머지 6명은 병을 앓고 있다. 게다가 한 씨의 두 아들 중 첫째는 뇌병변 장애 진단을 받았다. 두 발로 일어서서 걸은 적이 없는 아들을 지켜보는 한 씨의 마음을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한 씨 부모는 일제 수탈을 견디다 못해 히로시마로 가서 일했는데, 그 때 원자폭탄이 터졌다고 한다. 한 씨는 가족과 아들의 건강 문제가 원자폭탄 때문이라고 확신하지만 피폭 2·3세의 질병이 대물림 됐다는 점은 여전히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 씨와 같은 처지 사람들이 짊어진 고통이 너무 크다. 국제신문이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후손회 회원 540명의 신상카드를 입수해 분석해봤더니 54%인 287명이 최소 한 가지 이상 병을 갖고 있었다. 뼈나 관절의 통증을 호소하는 근골격계 질환이 25.7%로 가장 많고, 피부병 19.1%, 기관지 질환 12.5%, 갑상선 질환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벌인 ‘원폭 피해자 2세 기초현황 및 건강실태조사’ 내용과 다르지 않다. 당시 인권위가 대규모 조사에 앞서 피폭자 2세 47명을 인터뷰한 결과는 근골격계 질환 38.3%, 피부질환 19.1%, 정신질환 10.6% 순이었다. 피폭 2세가 일반인보다 질병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상당수 있어 걱정을 더한다. 경남도가 2013년 실시한 피폭 2세 244명의 건강상태 조사에 따르면 13.9%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치료와 경제적 지원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아직까지 피폭 2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 정부가 피폭 2·3세의 유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학적 진실 규명 없이 ‘피폭 영향의 유전성은 확실하지 않다’는 미국과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탓이란다. 반드시 고쳐 생각해야 할 대목이다. 고 김형률 씨가 2002년 피폭 대물림 문제를 처음 제기한 이후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나 정부 대처는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건복지부가 지난해부터 한양대병원에 의뢰해 5년간 피폭자 후손의 유전체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 다행이다. 피폭자 후손에 대한 첫 의·과학적이고, 피폭 영향의 유전 여부를 확인하는 조사여서다. 피폭 2·3세대가 잊힌 존재가 아님을 우리 사회가 확인해줘야 마땅하다. 특히 정부는 만성 질환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피폭 2·3세들을 위해 ‘선지원 후입증’을 검토해야 한다는 호소를 더는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그 다음 원자폭탄을 터트린 미국, 원인을 제공한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