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누수 현상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레임덕(lame duck·절름거리는 오리)은 가장 낮은 단계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게 브로큰덕(broken duck)과 데드덕(dead duck)이다. 브로큰덕은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인 조지 워커 부시의 임기 말 모습이다. 2009년 1월,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반대로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 처리가 무산되자 언론은 부시를 ‘다리가 부러진 오리’에 비유했다. 데드덕은 정치생명이 끝난 사람이나 실패한 정책을 의미한다. 레임덕→브로큰덕→데드덕으로 악화하며 권력이 새다 보면 진공 상태에 이르게 된다. ‘무정부 상태’다.

요즘 문재인 정부를 두고 레임덕 얘기를 많이 한다. 임기가 9개월밖에 안 남았기도 하지만, 만회하기 힘든 실정(失政)이 늘어난 탓이 크다. 특히 부동산 분야가 두드러진다. 26차례에 걸쳐 각종 정책을 쏟아냈지만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내성이 생겼는지 이젠 아예 정책이 먹히지 않는다. 레임덕·브로큰덕·데드덕을 넘어 ‘부동산 무정부 상태’에 직면한 듯하다. 전국의 아파트값과 아파트 전셋값이 각각 2019년 9월 셋째 주와 둘째 주부터 줄곧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지난달 전국 아파트 중위가격은 5억76만 원으로 1년 새 1억2794만 원 올랐다. 이는 도시근로자의 처분가능소득(올해 1분기 기준 417만 원)을 한 푼도 안 쓰고 30개월 이상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돈이다. 전셋값은 매매가에 육박한다. 전셋값이 매매가 이상이어서 경매에 넘어가면 보증금을 날릴 우려가 큰 ‘깡통 전세’도 흔하다. 이러니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영끌빚투’(영혼을 끌어모아 빚내서 투자)로 집을 장만하려는 이가 폭증한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집값이 고점에 이르렀다며 오른 값에 사는 추격매수를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영끌빚투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정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했지만, 신한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6월에 비해 3조8000억 원가량 증가했다. 영끌빚투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다. 홍 부총리가 추격매수를 경고한 지난달 28일, 그의 말을 비웃듯이 세종시의 한 아파트 청약에 22만여 명이 몰리기도 했다. 서울 거주자의 올해 상반기 ‘아파트 원정투자’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 인천 강원 등 전국에서 3만2420채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정부는 한계를 느꼈는지 시장 안정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집값 하락’ 으름장만 놓는다. 그 주요 근거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현재 0.50%) 인상이다. 기준금리 인상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한은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 방침을 밝혔다. 미 JP모건과 국내 일부 증권사는 이달 중 인상을 점친다. 문제는 1600조 원이 넘는 가계대출이다. 대출금리가 1% 포인트 오를 경우 늘어나는 이자 부담이 11조8000억 원에 이른다. 가계와 은행의 동반 부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 기대를 품은 영끌빚투는 끊이지 않는다. “한은이 자산시장 거품이 외환위기 수준에 근접했다며 부동산 가격 폭락을 경고했습니다. 한은은 2016년 상반기에도 2017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올랐습니다. 정부 말을 100% 믿으면 안됩니다.” 온라인에는 이런 낙관론이 난무한다. 문제의 본질은 정책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정부에 있다. 집값과 집세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최대 원인은 공급 부족이다. 한은은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영향은 공급요인”이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추격매수 경고만으로는 시장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며 2, 3년 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단기대책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수급요인만이 현 시장 상황(집값 폭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투기수요와 기대심리, 불법거래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추격매수 경고장만 날리고 있으니,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깊어져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부동산 무정부 상태’가 아닌가. ‘부동산 무정부’의 시민은 고달프다. 영끌빚투를 한 사람이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 등으로 대출금을 못 갚게 될 경우 나라의 미래는 암담해진다. 영끌빚투의 40% 이상이 20, 30대여서다. 이들의 다수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음지를 전전한다고 생각해 보라. 소비→생산→고용→소득→소비 등 연쇄 감소 악순환이 발생할 게 뻔하니, 파국의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만큼은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김 총리는 “방법이 있다면 어디서 정책을 훔쳐라도 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진정 그리 생각한다면 귀부터 열어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 겸허히 조언을 구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시장이 등을 돌리는 이유를 알아야 무정부 상태를 벗어날 길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