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1’은 쪼그라든 도쿄올림픽의 한 단면이다. 일본 정부는 세계 100개 이상 국가 정상급 인사를 초청할 계획이었다. 80여 개국 정상이 참여한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나 2012년 런던올림픽을 뛰어넘는 스포츠 외교 역량을 과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참석하지 않는다. 줄고 줄어 10명을 겨우 웃돌고, 그 중에서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만 두드러진다.

‘2020도쿄올림픽’ 개회식이 오늘 오후 8시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다. 8만6000명을 수용하는 경기장이지만 관중이 한 명도 없는 사상 초유의 개회식이다. 코로나19 전 세계 확산과 함께 일본 방역망에 문제가 생긴 탓이다. 도쿄는 지난 12일부터 4차 코로나19 긴급사태가 발효됐다. 1896년 근대 올림픽 태동 이래 감염병으로 1년 미뤄진 첫 올림픽, 첫 무관중 올림픽의 막이 이렇게 오른다. 일본 정부의 안전·안심 올림픽 다짐이 무색해졌다.

주요국 정상이 외면하듯이 일본 국민도 올림픽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NHK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를 보면 일본인 3분의 2가 올림픽 강행에 반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에 우리 돈 23조 원인 200억 달러를 쏟아 붓고도 부흥 올림픽의 꿈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식 예산은 154억 달러이나 추가 지출로 200억 달러를 웃돈단다. 원래 예상했던 74억 달러의 거의 3배다. 역대 가장 비싼 올림픽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3월 올림픽 1년 연기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 정부가 합의할 때 각자의 셈법이 있었다. IOC로선 운영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방송중계권료가 걸린 올림픽을 포기하기 어려웠지 싶다. 일본 정부는 더 복잡하다. 1964년 아시아에서 처음 올림픽을 열며 2차 세계대전 패전국에서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듯이 이번 올림픽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극복을 알리는 부흥 올림픽으로 만들려고 했다. 게다가 집권 자민당은 올림픽 성공 개최를 올 가을에 있을 중의원 선거 승리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그런데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지지율은 오히려 30% 수준에서 맴돈다.

특히 올림픽 유치의 주역이라 자처하던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개회식 불참 의사를 표명했다. 아베 전 총리는 2013년 9월 IOC 총회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며 대회를 유치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1년 연기에 합의한 당사자다.

사정이 이러니 일본 언론은 개회식 중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나루히토 일왕의 개회 선언 문구에서 ‘축하’라는 표현을 빼려 한다고 알렸다. 선수촌에서 감염 사례가 잇따르는 점을 고려할 때 메달 경쟁보다 확진자 숫자 세기에 더 관심이 쏠릴지 모르는 웃픈 상황이 우려된다.

하지만 33개 종목에서 339개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1만1000여 명 선수에겐 일생일대의 도전이다. 이 가운데 29개 종목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선수 233명이 있다. 비록 전체 일정의 96%가 무관중으로 진행되면서 중계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으니 TV올림픽 또는 안방 올림픽이라 하고,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해 스타 선수가 여럿 불참하지만 선수들에겐 둘도 없는 스포츠 이벤트다.

경기력을 뒷받침하는 관중의 격려와 환호성 없이 자신의 기량과 정신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룰 선수들에겐 평소보다 더 많은 무언의 함성이 필요하다. 그게 시상식에서 메달리스트가 스스로 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는 셀프 세리머니 올림픽을 위로하는 방법이다. 그 덕분에 한계를 이겨낸 선수들의 인간승리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나 빠진 게 있다. 이번 올림픽을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 계기로 삼지 못한 일본의 태도다. 주한일본대사관 소마 히로히사 총괄공사의 외교 무례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회식 참석과 한일 정상회담 무산을 넘어 한일 관계 파탄의 자충수다. 올림픽 선수촌 한국 선수단 거주동에 내건 현수막을 문제 삼는 일본 언론은 한 술 더 뜨는 격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에 대해선 IOC 금지 약속에도 불구하고 ‘나몰라라’ 한다. 심지어 우리 선수단을 위한 도시락 배달까지도 트집을 잡는다. 스포츠 외교에 실패하고, 경제적 효과도 물 건너 가고, 정치적 흥행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이웃나라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속좁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도쿄올림픽 개회식 주제는 ‘감동으로 하나되다’(United by Emotion)이다. 그런데 이대로는 사상 초유 감염병 사태를 스포츠의 힘으로 이겨내자며 내건 주제를 충족시킬 수 없다. IOC가 127년 만에 바꾼 올림픽을 상징하는 구호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다 함께’(Faster, Higher, Stronger-Together)에도 한참 못 미친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