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근로자가 또 사망했다. 기장군의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에서 작업자 한 명이 쓰레기 저장소에 빠져 목숨을 빼앗겼다. 동료를 구하려던 다른 작업자도 하마터면 변을 당할 뻔했다. 두 달 전엔 같은 업종의 다른 업체에서 유사한 사고로 직원을 잃었다. 자세한 사고 경위와 책임 소재는 경찰 조사로 가려지겠지만 분명한 건 현장 안전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있었다면 치르지 않아도 됐을 희생이라는 점이다. 이달 들어 발생한 산재사고가 벌써 몇번째인지 모른다. 산업체 공장, 아파트 건설 현장, 조선소, 부두시설 등에서 지금도 많은 근로자들이 추락, 끼임, 유해물질 중독 등에 노출되고 있다.

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를 당한 사람은 사고재해(9만2383명)와 질병재해(1만5996명)를 합해 총 10만8379명이나 된다. 이중에서 재해로 인한 사망자는 사고(882명)와 질병(1180명)을 합해 무려 2062명에 달한다. 매일 평균 300명이 다치고 6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작년엔 부산에서만 산업재해로 55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 들어서는 벌써 20명 가깝다. 안전에 대한 대비나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는 상시근로자 5명 미만의 소규모 영세사업장이나 하청업체에서 재해가 유독 잦다. 매년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도 산업 현장의 안전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결과이다.

산재를 예방하거나 사고 발생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으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안법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 책임 처벌을 강화한 법으로 내년 1월 2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단순 직원에 불과한 안전담당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영자나 사업주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재해가 발생했을 땐 무거운 처벌을 가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지난 주 정부의 시행령 입법예고 이후 중대재해의 개념과 범위, 처벌 수위 등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 양쪽에서 모두 불만을 터트리는 상황이다. 부산시는 이와 별도로 산재 예방을 위한 조례를 작년에 제정했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음식쓰레기 업체 같은 사고는 언제든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모든 국민은 생명과 건강을 보장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다. 고 김용균 씨나 고 이선호 씨처럼 일단 사고가 발생해 버리면 떠난 사람은 결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사고의 책임자를 가리고 합당한 처벌을 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런 불행이 닥치지 않도록 미연에 조치를 취하는 게 최선이다. 우선은 시행 중이거나 시행을 앞둔 관련 법에서 구멍을 찾아 제대로 메우고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산업안전당국과 지자체는 현장 점검과 사업주 교육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이다. 재해 예방을 위한 장비 구축이나 교육을 단순히 비용으로 보는 사용자의 사고 방식에도 이제는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