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로서 약 40여 년을 살아오는 동안 필자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왔다. 전공의 시절에는 외과 병실에서 중환자를 지키느라 사흘간 꼬박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수술을 24시간이 지나도록 계속한 경우도 있었다. 수술을 하는 도중에 환자가 유명을 달리하는 날엔 이루 말할 수 없는 극한의 스트레스 속으로 빠져든다. 외과 의사는 수술실에서 10시간, 20시간 동안 거의 소변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술시 스트레스가 전쟁을 치르는 병사의 스트레스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스트레스가 커지면 뇌에서 소변 억제 호르몬이 분비되고, 수술 도중에는 소변이 만들어지지 않게 하는 작용을 한다. 외과 의사들은 대수술이 끝나자마자 물을 많이 들이켜거나 무알코올음료, 맥주 등을 마신다. 갈증 해소뿐만 아니라 이뇨작용도 빨리 회복되는데다 컨디션 회복에도 적잖이 도움 된다. 외과의사들은 혹시 결과가 좋지 않게 되면 또 다른 엄청난 스트레스에 직면하게 된다. 이게 바로 오늘날 외과를 3D(Dangerous, Dirty, Difficult) 진료과로 분류하고, 의대생들이 이 과를 기피하게 한다. 이대로 방치하게 되면 향후 외과 의사의 부족사태로 인해 국가 의료의 큰 부분인 자동차사고, 산업재해 등 외상환자와 암 수술을 받아야 하는 국민이 치료받을 데가 사라지게 되는 무서운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간단한 외과 수술을 받으려고 중국이나 동남아 등 외국으로 떠돌아다녀야 할까? 참으로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한 일은 있다.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외과 의사도 이를 관리하기에 따라서는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체는 스트레스에 대항하여 이것을 스스로 극복하거나, 스트레스 요인에 오래 노출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트레스도 긍정적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로 나눌 수 있다. 당장에는 부담스럽지만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경우는 긍정적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대처와 적응에도 불구하고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불안이나 우울 등의 증상을 일으키게 되면 부정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즉 스트레스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생산적이고 건강, 행복, 성공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직장생활을 몇십 년간 성실히 했던 사람이 정년퇴직 직후 갑자기 나이가 확 들어 보이거나, 병이 들고 사망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는데도 말이다. 한 연구자가 스트레스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 쥐 실험을 했다. 쥐를 물에 담갔다 건졌다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준 그룹(스트레스군), 아주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도 충분히 제공하고 편히 지내게 한 그룹(쾌적한 군), 먹는 양을 평소 양의 1/3정도를 줄이고, 또 좁은 케이지 내에 다소 많은 수의 쥐들을 넣어서 사육한 그룹(적절 스트레스군)으로 나누어 수명을 조사했더니 스트레스 군은 병도 잘 걸리고 수명도 짧았다. 적절한 스트레스를 받은 쥐들이 가장 오래 살았다는 실험 결과가 도출됐다.
적절한 스트레스와 자극은 호메시스(Hormesis)효과를 가져 온다고 한다. 호메시스는 견딜만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인체가 이를 유익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현상이다. 결국 스트레스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에 따라 지나친 신체 부담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호메시스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즉 스트레스를 호메시스 상태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고, 그것은 곧 장수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다시 말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생활 태도를 보다 적극적이고 낙천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거다.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어떤 스트레스도 호메시스 상태로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선진국에서는 정년퇴직 후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줄어들어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예방하려고 은퇴 후 노인 일자리 마련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절히 스트레스 받고 살아가라는 배려다. 이 정책은 은퇴 당사자에게는 노화를 막고 건강을 유지해서 좋고, 국가적으로는 경험이 많은 노인들을 이용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대한민국에서 적극 참고해볼 만한 정책이 아닐까.
온종합병원장·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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