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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여름 바다 추억 /양민주

  • 양민주
  •  |   입력 : 2021-07-13 20:09:04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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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바다를 가까이하고픈 계절이다. ‘바닷가에 왔더니 /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 중략 // 바닷가는 /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 고기비늘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여 /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백석 시인의 ‘바다’라는 시의 부분이다.

참고로 ‘개지꽃’과 ‘쇠리쇠리하다’는 ‘나팔꽃’과 ‘눈이 부시다’라는 평안북도 방언이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추억을 선물한다. 나에게도 바다가 준 추억이 있다. 그중 젊은 시절의 첫 추억을 떠올려 본다. 갓 스물을 넘긴 어느 해 여름 고향 친구 넷이 피서를 떠나기로 했다.

마산 앞바다 선착장이 있는 뱃머리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 장승포로 향했다. 태어나 처음 타는 여객선이라 뱃멀미를 심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장승포항에 도착하여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검은빛이 감도는 몽돌이 가득한 바닷가에 도착했다.

우리는 가지고 간 초라한 텐트를 하나 치고 짐을 풀었다. 그리고 모든 껍데기는 벗어버리고 해방된 기분으로 수영복 반바지만 걸친 채 바다에 뛰어들어 해수욕을 즐겼다. 어릴 적부터 낙동강에서 수영하며 자라온 터라 개헤엄은 잘 쳤다. 우리는 겁도 없이 먼 바다까지 헤엄쳐 들어가서는 바다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며 둥둥 떠다녔다. 먼바다까지 들어가면 위험하므로 절대 안 된다는 것은 그 이후에 알았다.

한참을 그렇게 놀고 있는데 저 멀리 산언덕 위에서 세 명의 동네 아가씨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먼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이방인이 신기해 보였던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리도 손을 흔들면서 놀러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들은 한참을 망설이며 지켜보더니 수줍은 듯 우리를 찾아왔다. 함께 어울려 놀며 가져간 음식도 나누어 먹었다.

어둠이 내리고 제법 친해져 서먹함이 없어지려 할 때였다. 주위가 소란스러워 둘러보니 한 무리의 동네 청년들이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가 동네 아가씨들을 꾀었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중 제일 험상궂게 보이는 남자는 내 옆에 있던 아가씨의 친오빠였는데 유독 거칠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젊은 혈기에 패싸움이 벌어질 판이었다. 숫자로 보나 텃세로 보나 여러 가지 정황상 우리가 불리해 보였다. 그래서 꼬리를 내리고 가져온 술이 있으니 한잔하자며 술을 권했다. 그들은 동생뻘 되는 아가씨들을 돌려보냈는데 내 옆에 있던 아가씨가 오빠에게 많이 혼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오빠들은 여동생을 얼마나 보살피던지 보살피지 말아야 할 것까지도 보살피는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그들과 어울려 밤이 이슥토록 술을 마셨고 그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은은한 달빛 아래 몽돌 위를 구르는 처연한 파도 소리 들으며 늦은 잠을 청하려는데 그들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허연 막걸리 말 통을 어깨에 메고 와서는 지금까지 육지에서 가지고 온 술대접을 잘 받았으니 이제는 자기네들이 거제도 술을 대접하겠단다. 그때는 그런 의리가 있었다. 우리는 어울려 아침 해가 벌겋게 떠오를 때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여름 바다에서의 첫날밤을 술과 함께 꼬박 새우고 말았다.

글의 모두(冒頭)에 쓴 백석 시인의 시는 시인이 통영 바닷가 마을의 한 처녀를 사모했으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를 찾아가서 쓴 시 같다. 이때의 바다는 시인의 마음과 같이 매우 쓸쓸하고 서러웠으리라. 이렇듯 바다는 사람의 기분을 닮은 또 다른 자아가 된다.

여름에 접어들면서 장마와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다. 지친 마음을 달래는 데에는 바다가 좋을 것 같다. 방역수칙을 지켜 우리의 기분을 닮은 또 다른 자아인 바다를 보러 길을 나서보자. 고달프면 고달픈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우리를 맞아줄 것이다. 나도 여름 바다에 가면 오빠에게 혼나며 돌아가던 그 옛날의 거제도 아가씨가 떠올라 고독해질 것 같다.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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