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최고경영자과정의 강의를 접었다. 강의 내용은 자본주의 사상의 변화에 관한 것인데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에 입각해서 유신체제를 비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상의 원본도 우리 사회일각에서 ‘빨갱이’로 단죄되는 상황이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정치의 장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반대파를 한편에서는 친북 용공세력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반민주세력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하며 크고 작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민족분단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우리의 생존을 위해 지켜야할 궁극의 이념으로 내면화하였다. 그 이외의 사상들은 ‘빨갱이’로 간주되었고 우리사회에서 배척되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이름 하에서도 두 적대적 세력이 존재한다. 하나는 유신체제세력으로 대변된다. 자신들이 설정한 친공 친북 좌파 등 요소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자유의 이름으로 수용했다. 이들은 독재를 해서라도 공산주의와 북한의 침략을 막고 빈곤을 벗어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민주화운동세력으로 대변된다.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하고 법에 입각한 대의(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라 생각한다. 도대체 자유민주주의는 어떤 사상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알다시피 자유민주주의는 18세기 유럽의 중세봉건체제와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근대시민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과 박애를 모태로 한다. 자유주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기 의사결정권을 갖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이런 다원주의는 타인과 평등관계로 인한 이해의 충돌로 나타난다.

자유주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경제적 갈등을 해결하는 자본주의 체제로 이어진다. 정치적 사회적 갈등의 해결은 국민이 자신의 대리인을 선출하고 법에 입각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정립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 독일 정치학자 칼 슈미트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란상을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근본적인 모순으로 파악했다. 사회적 다원성과 이질성을 용인해야 하는 자유주의와 사회적 동질성을 위해 시민의 실질적인 평등을 용인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이의 양립불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자유를 추구하면 평등은 추상적인 상징으로만 존재하고, 평등을 추구하면 자유를 억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장은 현존하는 적과 동지들 집단 간 생존투쟁의 장으로 변모한다. 따라서 국가의 임무는 이런 투쟁을 종식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인데 사회의 모든 영역을 파악하고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전체주의화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유신헌법 전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문구로 처음 등장했다. 유신체제와 5공 신군부 정권하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어떻게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는지 우리는 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역사교과서 파동처럼 주요 정치·경제·사회적 현안과 관련하여, 최근 유력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한편 자유민주주의는 세계화 앞에서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경쟁원리를 국가를 뛰어 넘는 모든 영역에 확대 적용하면서 정치적 공간을 축소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런 불평등의 해결에 무능력한 의회민주주의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트럼피즘과 영국의 브렉시트처럼 대중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포퓰리즘이 등장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에서 현직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이 대중적 지지를 등에 업고 대선출마하는 것도 이런 징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 간 갈등위에서 무정부적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양극단을 초래할 수 있는 불안정한 체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대선의 후보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상호배타적 갈등을 조정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안정화할 수 있는 당신의 대안은 무엇인가?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