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는 3차원 공간인 지구의 지표면을 2차원 공간에 축소하여 재현(再現)한 것이다. 이때 지도제작자는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의도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재현은 선택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도는 사실 그 출발부터 정치권력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영토상의 권리를 주장하고, 제국주의적 정복과 통치의 수단으로 세계적 패권을 주장하는 세력과 밀접한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잘 사용되지 않지만, ‘극동(far east)’이란 방위개념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왜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을 극동이라 부를까 자신들의 기준에서 우리의 위치가 동쪽 끝이 되기에 극동이라 부르고 지도에 표기했는데, 그들은 유럽인들이었다.
최초의 세계지도는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BC 610~546)가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그리스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으로 세계 지리가 둥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여 처음으로 지도에 경도와 위도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프톨레마이오스(90~168)는 지구의 둘레를 360°로 등분한 경·위선망을 설정하고, 원추도법에 유사한 지도투영법으로 세계지도를 제작했다. 12세기 십자군 원정으로 중국의 나침반이 소개되었고, 항해술과 조선술의 발달은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되어 지도 제작의 새로운 전환기를 가져왔다. 네덜란드의 메르카토르(1512~94)는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알려진 투영법을 고안했는데, 지도는 전쟁 영토 정치 및 사회경제 등 다양한 목적을 갖고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영국 콘월지방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6월 16일 스페인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마주 대한 지도도 어떠한 목적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마드리드의 상원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지도는 18세기 제작된 ‘조선왕국전도(Royaume de Coree)’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에서는 독도로 여겨지는 섬을 ‘챤찬타오(Tchian Chan Tao)로 표기하고 있다. 독도의 중국식 표기가 우산도(于山島)인데, 이를 천산도(千山島)로 혼동해 표기했다고 전해진다. 이 지도는 1730년 프랑스 지도제작자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이 중국의 실측 지도로 알려진 ‘황여전람도’를 참고해서 발간한 ‘신중국지도첩’에 포함된 것이라 한다. ‘조선왕국전도’는 유럽인이 만든 현존하는 조선지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지도를 제작한다는 것은 한 민족 또는 국가가 더 넓은 외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해 자신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이는 주로 상업적 욕망이나 제국주의적 야욕, 지정학적 관심 또는 인종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던가! 18세기 유럽의 지도제작자들이 가졌던 관심은 오늘날 국가들 간의 영토분쟁에 하나의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스페인은 왜 한국 대통령에게 독도가 그려진 지도를 보여주는 외교적 행위를 했을까.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해답은 스페인이 최근 갖게 된 일본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것이다. 자동차산업이 국민경제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은 최근 일본의 닛산이 바르셀로나의 공장 철수를 결정하게 되어 약 2만 명의 실직자가 발생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스페인 정부가 이 공장설비를 전기-수소차 생산기지로 전환하고, 그 파트너로 한국과 한국기업을 염두해 두고 있다는 관측이 있다.
지도는 현실의 선택적 재현이다. 지도 위의 국경은 영토로, 영토는 다시 주권국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당연해 보이는 국경은 한편으로 지도제작자가 지도에 표시하기로 적극적으로 선택한 결과이다. 이때 지도제작자는 전해 내려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영토 간의 기존 경계를 표시하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지도가 재현하고 있는 한국의 주권 영토에 독도가 표기되어 있다. 18세기에 표기된 독도의 주권 귀속처가 21세기에 소환된 것이다. 역사의 먼지를 털어내고 그 빛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이 아닌 한국을 선택하기 위한 외교적인 도구로서 말이다.
이번 G7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모범적인 코로나 방역국가로서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의 국제적 어젠다를 제시하는 선도국가로서 위상을 과시한 바가 있다. 독도가 표기되어 실물로 모습을 드러낸 ‘조선왕국전도’는 국제무대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지도의 모습으로 재현(再現)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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