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사는 함양의 온배움터와 서울 지순협 대안대학뿐만 아니라 제도권 대학인 서울시립대에서 ‘과학사 이야기’와 ‘인문사회계를 위한 물리학’ 강의를 맡고 있다. 특히 ‘과학사 이야기’는 전공과 관계없이 열려 있는 교양강의로 수강 신청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강사의 남다른 능력이라기보다는 보통의 과학 강의와 달리 ‘과학의 역사’라는 주제 자체가 갖는 특별함 때문인 것 같다. 그 특별함이란 몇몇 과학자들의 천재성과 더불어 당대의 사회적 배경, 과학자들의 삶의 굴곡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축적된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타 과학 수업에 없는 친근함이고, 더불어 과학의 역사 또한 인간이 함께 만들어온 중요한 역사임을 깨닫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과학교육과정은 원리와 법칙 그리고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고 그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풀이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원리와 법칙을 익히는 것을 배제하는 과학 공부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뉴턴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코펜하겐 해석을 기초로 한 양자역학을 익히지 않고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예제들을 암기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접하면서 그 응용 사례들을 익히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원리를 익히는 데에만 치우치다보니 과학교육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과학의 역사 속에서 승리를 차지한 법칙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법칙에 이르는 흥미로운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결국 과학 역시 불완전한 인간들의 셀 수 없는 시행착오와 혼란을 거치며 차곡차곡 쌓여져 온 것들의 결과란 사실을 인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발명왕 에디슨은 1000번의 도전 끝에 전구를 발명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전구를 만드는데 실패하게 되는 999가지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과 같이 과학의 역사도 매우 많은 실패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20세기 들어 고전물리학을 극복하며 미시세계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진영 간의 전쟁을 방불케 했던 물리학자들의 힘겨운 과정들은 더욱 드라마틱하다.
이런 역사들을 배제한 과학 공부란 결국 아무런 고민 없이 받아들여야 할 사실들의 나열일 뿐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과학의 역사란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원천이다. 하나의 법칙이 완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모르면 절망적인 시행착오를 극복할 수 있었던 반전의 계기를 알 수 없게 되고 나아가 앞으로 새롭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실패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
과학사를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통 우리는 수학과 더불어 과학에 있어서 정답은 단 하나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과학 교과서에는 19세기에 ‘불에 타는 것은 산소와 결합하는 현상’처럼 당시의 중요한 과학적 문제들에 대한 최종 결론은 명확히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전에 불에 타는 현상이란 ‘플로지스톤’이란 입자가 물질로부터 유출되는 것이란 이론이 연소와 관련된 많은 현상들을 매우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17~18세기에 빛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뉴턴이 주장한 ‘입자설’과 하위헌스가 주장한 ‘파동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합리적 이론으로 공존했다는 사실만 봐도 정답은 단지 하나라는 가정은 옳지 않다.
지금의 과학교육은 정해진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뿐인 정답을 찾아가도록 하는 기능적 훈련에 머무르고 있다. 이 방식으로는 다양한 사고와 관점을 가지고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보고 이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게 하는 창의적 역량을 기를 수 없다. 오히려 반대로 사고를 획일화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요하는 문제들을 대하는 데 있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과학사 공부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넘어 존재했던 과거의 수많은 시도들을 접하게 된다면 이는 새로움을 창조하는 든든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유상균 지순협대안대학 학장·온배움터 교수·‘시민의 물리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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