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 탄소 중립, 나중에 해도 될까. 지난달 2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런 생각을 깨는 사건이 발생했다. 헤이그 법원은 세계 최대 석유 가스 기업인 ‘로열더치셸’에게 2030년까지 이 회사가 발생시키는 온실가스 45%를 줄일 것을 명령했다. 셸에겐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셸은 그동안 총예산 1/4에 해당하는 막대한 돈을 투자해 2030년에 20%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제 45%를 줄여야 하는 셸은 예산을 두 배 더 투자하고, 석유와 가스 생산 12%를 중단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셸의 사례는 앞으로 우리 산업계가 겪어야 할 미래로 보인다. 사전 경고도 없다. 문제가 터지면 지금 당장 결정해서 급진적인 전환을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40개국 정상들과 우리나라 대통령도 ‘기후정상회담’에 참여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정상들 앞에서 ‘신규 해외 석탄발전 금융 지원 중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동안 싼 이자의 공적 금융을 통해 석탄발전소 해외 수출을 장려해왔다. 작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탄소 중립 추진 전략’에도 탄소포집(CCUS) 기술을 적용해서 석탄발전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예고도 없이 석탄에 금융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국제사회의 압력에 우리나라 정부도 따라간 것이다. 이처럼 셸과 우리나라 정부가 경험하는 탈탄소의 시간은 빠른 속도로 지구촌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주요 7개국(G7) 장관들은 석탄발전을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석탄에 대한 국제 투자 중단과 신규 석탄발전 수출에 대한 모든 정부지원을 올해 안에 중단하겠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미국 대통령 기후특별대사인 존 케리는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석탄만이 아니다. 석유와 가스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도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이번 G7의 결정은 당장 주요 20개국(G20)으로 확장되고,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릴 ‘유엔기후총회’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50% 감축을, 독일은 65%, 일본은 46%, 영국은 2035년까지 78% 감축을 선언했다.
이런 속도라면 올해 안에 탈탄소 시나리오는 지구촌으로 공유된다.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2030년 목표를 탄소중립에 맞추어 제시하지 않은 우리나라에게 국제사회는 2030년 최소 50%의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한다. 기존 목표인 24.4%의 두 배다. 우리나라도 탈탄소 시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탈탄소의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
필자는 탈탄소 전환을 방해하는 두 개의 적이 있다고 본다. 첫째, 겉은 탄소중립인데 속은 과거의 익숙함으로 채우는 것. 둘째,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계층과 공동체를 보호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 적들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달 20일 ‘임팩트온’은 대통령이 약속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 공적 금융 지원 중단’에 대해 기재부의 입장을 들어 ‘현재 추진 중인 석탄발전소에는 예외를 두어 자금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31일 ‘머니투데이’는 “탄소중립을 기존 산업 축소가 아닌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접근해야 한다”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우리 정부에게 탄소중립은 전환이 아니라 예외 허용, 기존산업 유지, 성장 동력,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식어로 보인다. 탄소중립을 말하면서도 그 내용은 탄소시대의 유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탈탄소 전환은 사고방식, 생활방식, 생산과 소비 전체를 대담하게 바꾸는 것이다. 아울러 전환에서 피해를 볼 중소기업, 노동자 등을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전환의 이런 규칙이 없는 우리의 시간은 위기의 시간이다. 이것을 인식하고 대처하지 않으면 셸이 겪고 있듯이 산업은 축소되거나 붕괴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탈탄소 시대를 구성하는 체계를 갖춘 ‘탄소중립과 공동체 보호법’을 만들고, 정부와는 독립된 거버넌스 기구가 법을 집행해야 한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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