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있다. 젊었을 때부터 건설 계통의 일을 하다 지금은 지역의 어엿한 중견 건설업체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장을 누비며 정열적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2010년에는 사재를 보태 회사명을 딴 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문화예술인들뿐만 아니라 국민의 독서문화 함양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건설사는 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북항재개발 지역 내 초고층 생활형 숙박시설인 레지던스 건물의 시공사로도 참여해서 분양과 준공을 마치고 최근에는 입주가 이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업체는 이미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을 건립했으며, 부산역과 국제여객터미널을 잇게 될 환승센터의 사업권마저 따냈다. 북항재개발구역의 핵심시설 세 곳이 동일한 지역 건설업체가 참여하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9급 기술직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후 부산시를 시작으로 국토부와 청와대를 거쳐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 2019년 3월 초 북항통합개발추진단의 단장이 되어 최근까지 북항의 통합개발을 이끌었던 사람이다. 업무 능력과 추진력, 그리고 정부 사업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사업 진척이 더뎠던 북항개발의 공정률을 단기간에 급속도로 끌어올리면서 내년 상반기인 대통령 임기 내 준공이라는 공언(公言)을 실천하는 북항 최전방의 사령관이었다. 굳이 현 대통령의 국정 과제요 공약이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시민에게 가깝지만 먼 공간이었던 북항을 시민의 품으로 돌리려는 기본 개발 방향에 맞춰 진행해 온 사업이었던 만큼 북항 개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부산시민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추진해온 북항 개발의 ‘선장’은 최근 해수부의 인사 발령으로 그 자리가 교체되었다.

실업가와 국가공무원이라는 직업만 다를 뿐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오랫동안 부산을 위해 헌신한 점이다. 자신의 업무와 영역에 대한 능력과 자부심도 강하다. 사회공동체를 위해 한눈 팔지 않고 매진해왔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추진력과 정열적인 업무수행 능력도 물론 갖추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최근 두 사람은 시민과 언론의 화제의 중심에 있다. 공교롭게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한 사람은 시민에게 공분의 표적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해수부의 북항통합개발추진단에 대한 자체 감사로 좌천성 발령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 사람은 격분한 시민이 부산시에 청원을 넣게 한 ‘장본인’이 되었으며, 또 한 사람은 북항통합개발 추진협의회를 비롯한 부산 소재 시민단체의 해수부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키게 한 ‘불씨’가 되었다.

북항재개발의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행보와 이에 대한 시민의 반응을 지켜보며 생각한다. 두 사람을 비교해서 도덕성이나 성품의 우열을 따지기 위해 위의 보기를 들고 온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보통사람의 의지와 열정을 뛰어넘는 에너지로 자신의 직분에 힘써 왔다. 누구나 자신의 직분을 갖추고는 있지만 아무나 직분에 최선을 다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해서 자신이 맡은 업무가 기대 이상의 효과나 파장을 가져오는 수가 있다.

민간 기업이든 정부기관이든 국민을 외면하는 업무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공익(公益)의 뜻을 아무리 좁게 해석해도 ‘공동’이라는 ‘모두 함께’의 의미를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회사뿐만 아니라 공공조직에 몸을 담은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직분에 더해 열린 눈과 이타적 업무 수행성을 요구한다. 그런데 말은 쉽지만 현실은 늘 그렇듯이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선의의 마음과 실행력을 갖추었더라도 그 결과는 예상치 못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사욕으로 가득 찬 마음과 실행력으로 뭉친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선의의 방향과 길을 끊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조롭던 북항재개발이 해양수산부 내부의 ‘수상한’ 문제 제기로 자체 감사가 이루어졌고, 이달 말 감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감사와 관련해 문책성 발령을 받았다. 시민사회가 들썩이며 시와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똘똘 뭉친 것이다. 떠난 사람은 그래서 외롭지 않다. 그리고 한 사람도 수많은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북항의 한복판에서 이들과 맞서고 있다.

직분에 충실함은 공공사회에 끝내 이득을 안긴다. 이윤이나 수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결국 삶의 질과 정신적인 만족감, 바로 행복인 것이다. 북항에 남아 시민과 맞서고 있는 분명 외로울 것임에 틀림없는 한 사람과 떠났지만 분명 행복의 편에 서 있는 떳떳한 한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을 본다.

정훈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