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 관광을 연결 지으면 ‘속물’로 보는 시선이 있다. 마치 관광객이 가져다 줄 수익으로 예술의 가치를 환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즐기는가’는 문화콘텐츠의 대중성 뿐만 아니라 퀄리티를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의 자양분이 특별한 계층에만 흡수됐던 시절에야 그 질과 양(대중성)이 별개였겠으나, 요즘은 예술적 소양이 풍부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훌륭한 문화 자원이 있는 곳에는 사람이 몰린다. 세로 77㎝, 가로 53㎝의 ‘모나리자’를 보러 하루 1만5000명(대다수가 외지인)이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것처럼. 모나리자를 보고 나선 관람객은 관광객이 돼서 근처 식당에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기념품도 산다. 이 그림은 파리라는 도시의 품격을 높일 뿐만 아니라 큰 돈도 벌어다 준다.

제주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은 그간 소장 작품이 빈약해서 그 이름이 민망하다는 평가를 들어왔지만, 최근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이중섭 대표작 12점을 기증받아 ‘급이 다른 미술관’으로 격상됐다. 이 그림들을 보러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주로 몰려갈지 상상도 안 된다.

이 전 회장의 기증 미술품을 전시·보관할 일명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전국 지자체가 팔을 걷어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컬렉션 중 몇 개만 소장해도 작은 미술관 하나는 만들 정도로 귀한 유산인데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박형준 시장의 비전처럼 이 미술관의 부산유치가 정말로 실현된다면 국제관광도시의 비전에 급행철도가 놓이는 것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주제에서 방점이 찍히는 게 ‘미술관’ 아닌 ‘작품’이라는 거다. 이건희의 컬렉션이 대단하기에 이건희 미술관이 탐나는 것이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즉 콘텐츠. 그런데 부산의 상황은 이와 반대다. 허남식 전 시장 때 이후 부산시가 펼쳐온 문화정책은 일관되게 ‘인프라 확충’이었다. 기존 부산문화회관·시민회관·시립미술관에 더해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이기도 한 영화의전당과 현대미술관이 생겼다. 북항에는 부산오페라하우스, 부산시민공원에는 국제아트센터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수영강 건너편에서 보는 영화의전당 실루엣은 얼마나 고우며 북항을 수놓을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문제는 천문학적인 건립비를 들여 이 시설들을 짓기 전에 무엇으로 그 속을 채울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의전당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은 크지만 “막대한 건립·운영비에 걸맞은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말도 10년째 나온다.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공간과 시간을 메울 콘텐츠는 마련돼 있는가. 오페라 전용 공연장으로 쓸지 복합공연장으로 쓸지 아니면 다용도 문화시설로 쓸지, 활용에 관한 계획 없이 건물만 올라간다. 국제아트센터도 비슷한 고민에 봉착할 것이다. 이런 반복은 “지어놓으면 채워진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기인한다.

공공 문화시설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콘텐츠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한 관광 집객 효과까지 유의미하게 있다면 직접적인 매표 수익이 아니라도 건립·운영비를 상쇄할 만한 성과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에 문화시설이 속속 생기는 건 무척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시설들이 껍데기만 번듯한 랜드마크 신세를 벗어나려면 콘텐츠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

부산시가 부산문학관 건립을 본격화했다. 누구를, 어떤 시대를, 어떤 문학사조를 기리는 것인지에 관한 공감대 없이 ‘200억~300억을 투입, 신평·장림산업단지 내에 짓는다’는 계획부터 나왔다. 산단대개조 사업과 연계하면 건립 추진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에 관한 열렬한 고민 없이 지어지는 문화시설이 의미를 갖기는 쉽지 않다. 지향점이 문헌 수장고나 문학인 사랑방, 복지관이 아닌 진짜 문학관이라면 사람들이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콘텐츠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게 새로 보일 것이다. 그 위치가 적절한지, 운영주체는 누가 돼야 하는지, 규모는 어떠해야 할지. 긴말 필요없이 전국 유수 문학관의 성공사례를 보면 된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