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유럽에서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하다. 생선튀김과 감자칩을 함께 먹는 ‘피시 앤 칩스’ 말고는 대표선수를 꼽기 힘들다.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같은 스타 셰프가 나온 게 신기할 정도다. 그래도 피시 앤 칩스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처럼 과거 영국 식민지였거나 영연방에 속한 곳에서 여전히 즐긴다. 재미있는 건 이 나라들도 맛에 있어서는 국제사회에서 별 인정을 못 받는다는 점이다.

‘경상도 음식 맛없는 줄은 경상도 사람만 모르고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경상도 하면 투박한데다 짜고 맵기만 할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왕가나 반가의 전통이 남아있는 서울 경기, 감칠맛과 개성이 풍부한 호남과 비교해 딱히 특징이 없는 것도 일면 사실이다. 같은 경상도라도 부산은 조리법이나 입맛에 대한 자부심과 고집이 강한 대구 경북과 또 다르다. 이런 부산 음식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혼종성이다.

생선을 날것으로 먹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이진 않았다. 부산이 생선회의 도시가 된 데는 개항과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생선을 며칠 숙성시킨 선어회를 선호하는 일본과 달리 갓 잡은 활어를 찾는 부산의 회문화는 그런 현지화의 결과다. 돼지고기 국물에 밥을 넣은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돼지뼈를 우려 먹는 일본 풍습과 육류를 좋아하는 이북 피란민의 식습관이 그것이다. 옛 조방 앞 노동자들은 값싸고 영양이 풍부한 돼지국밥을 후루룩 말아 배를 채우고 다시 일터로 향했다. 밀면 역시 이북 출신 피란민이 메밀가루 대신 구호물자로 많이 보급되던 밀가루로 면을 뽑은데서 시작됐다. 일제 식민, 6·25 전쟁, 산업화의 시기를 통해 토착민과 이주민이 뒤섞였고 그 속에서 융합과 변주를 거쳐 지금의 부산 음식이 만들어졌다.

오랫동안 도시 경계 안에 갇혀있던 부산 음식은 십수년전부터 맛집 블로그와 TV 프로그램을 타고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부산 어묵은 전국 어딜 가든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고, 남포동 씨앗호떡은 인스턴트로 거듭났다. 부산의 노포 내호냉면도 이달부터 홈쇼핑에 진출한다. 면 육수 양념장이 한 세트로, 집에서 간편하게 밀면을 만들 수 있다. 내호냉면은 함남 내호리에서 냉면집을 하다 전란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와 남구 우암동에 터를 잡은 부산의 원조 밀면집이다. 이제는 강원도 산골이나 미국 뉴욕 안방에서 전화 혹은 온라인 주문으로 부산을 맛보는 시대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