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 하며/ 비에 젖어 한숨 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10명 남짓, 사람들이 거리두기를 하며 앉은 공연장에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가 울려 퍼진다. 첫 곡을 끝낸 성악가가 배호의 생일에 이곳 부산에서 공연을 하게 돼 뜻깊다는 말을 한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 중후한 저음의 성악가는 배호를 연상케 했다.

지난달, 배호 서거 50주기 기획 공연이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열렸다. 플레이캠퍼스(공연 전문기획사) 대표이자 친구이기도 한 J가 연출을 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걸음을 한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트로트를 오페라로 듣는다? 음악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조금은 생소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배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트로트 가수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J와 주먹 인사를 나눈 뒤 예매율에 관해 물어보았다. J는“망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숨짓는 사내가 여기에도 있구나 싶었다.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걸 물어 봄으로써 괜스레 미안하고 어색한 기분은 뭘까, 그 상황이 더 불편하고 미안하다. “망했다”그 말에 마음까지 무거웠다.

공연은 제1부 안개(霧), 제2부 비(雨), 제3부 밤(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돌아가는 삼각지’ ‘배신자’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이별의 부산정거장’ 같은 귀에 익숙한 노래들을 부를 때는 타인의 시선은 상관없이 마스크를 쓴 입이 떼창을 한다. 사내는 삼각지 로터리를 찾아왔다, 울고 간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에 누군가를 찾아왔다, 지난날 새긴 그 이름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이곳을 떠나간다. 그런가 하면 빗소리는 나의 마음, 나의 고독이고 길 잃은 나그네의 조용한 쓰라림 이라고 읊조린다. 그 시절 푸르던 잎이 어느 덧 낙엽지고,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사무친 상처에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를 본다. 사내는 기약 없이 기다리고, 서성거리고, 찾아왔다 다시 되돌아감을 반복한다. 한숨과 눈물, 서러움이 드리워져 있다. 안개비 속을, 어둠 속을 걷는 사내에게서 짙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의 노래는 슬픈 희망의 비상구였다.

그런 사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내 모습과도 닮아 있는 듯했다. 늘 서성거리고, 망설이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찾아갔다, 결국은 되돌아오고야 마는…. 나의 그림자처럼. 스물아홉 청춘이 부르는 외로움에 나는 물들고 있었다.

“배호와 동시대(1960~1970년대)를 산 사람들에게 배호 노래는 유행가가 아닌 삶의 반려였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산업역군과 산업전사로 동원하여 질주와 경쟁 속으로 매몰시킬 때, 배호는 그 사람들 대신 노래하며 변화에 뒤처진 시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기약 없이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기억하고 대신 울어줍니다.”

“배호의 삶과 노래는, 최인훈 소설 ‘광장’과 함께 출발하여 김승옥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거쳐 조세희 소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어둡고 추운 시대를 걸어 나와 지금도 우리의 삶과 생활 속에서 호흡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호는 연민과 연대를 노래한 한국가요사의 겨울 나그네입니다.”

성악가가 배호 음악의 원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 이야기만 한다. 나 같은 사람은 대화에 낄 수도 없고 끼워주지도 않는다. 비트코인도, 주식도, 부동산도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왕따 아닌 왕따가 되어 버린다. 변화에 뒤처진,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움을 나 대신 그가 울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대와 사람을 보듬어 주는, 그 나그네에게서 위안을 받은 하루였다.

중구 중앙동에 갈 일이 있었다. 공연이 떠오른 탓이었을까, 40계단을 올랐다.‘아코디언 켜는 사내’옆에 앉았다.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 있는데 코끝이 시큰했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때였다. 스물아홉, 겨울 나그네가 속삭이듯 내게 말을 건넸다. “누가 울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