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산업은 환자들의 병을 진단 치료 예방 재활 완화하기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체제의 분야를 통틀어 말한다. 필자는 IMF 위기에 직면했던 1997년 말부터 기회가 닿을 때마다 정책 당국자들에게 ‘의료는 단순히 복지가 아닌,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육성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창해 왔다. 의료는 인간에게 제공되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서비스이며, 누구에게 차별 없이 제공돼야 한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지금, 과거 수천 년에 걸쳐 성취했던 일들이 불과 몇 개월 안에 이루어지는 대격변기에 직면해 있다. 의료 환경도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급격하게 달라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학은 19세기 말에 들어온 서양식 의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당시엔 극히 일부 계층만 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1970, 80년대 국가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지만, 의료계에서는 탄식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갔다.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의료보험의 저수가 정책, 의약분업과 의약품 실거래가 상환제 등 의료계에 희생을 강요하는 여러 사회복지 정책들이 잇따라 도입됐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계는 사회복지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로 외과·흉부외과·산부인과 등 필수 진료과이면서도 의대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진료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다루며,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산업에는 의료도 포함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의료 산업이 갖고 있는 고부가가치성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 발 맞추어 우리 의료산업도 우수한 의료 인력 양성과 함께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코로나 감염병 사태 이후, ‘K방역’이라 불리는 한국의 코로나 대처는 우리나라를 단숨에 의료 선진국의 반열로 진입시켰다.
우리나라의 높은 의료 수준은 단순히 코로나 방역성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7대 암(癌) 5년 생존율은 이미 의료 선진국 미국을 추월했다. 위암의 경우 우리나라 5년 생존율이 65.3%로, 미국의 26%를 훨씬 앞선다. 또 간암의 5년 생존율도 우리나라가 25.1%로, 미국의 13.6%보다 높다. 이런 빼어난 의료 성과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포함해 해외 의료진 1000여 명이 해마다 우리나라에 와서 의료 연수를 받는 것으로 다시 한 번 증명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환자수도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15년에 외국인 환자 29만 6000여 명에 수익은 6694억 원이었으나, 2020년에는 생산 유발효과가 15조 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2021년 보건산업 수출액이 256억 달러 정도로 예상돼, 철강 수출액 267억 달러나 석유제품 285억 달러 등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다.
산업화를 논할 만큼 선진화로 치닫는 우리나라 의료계에도 문제점들은 많다. 첫째, 저수가 정책으로 인한 ‘박리다매(薄利多賣)’의 문제다. 의사 한 명이 하루 100명 이상의 환자를 봐야 병원이 유지되므로 연구에 치중해야 할 시간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신약이나 신의료기술의 개발에 투자할 시간과 인력의 확보가 시급하다. 지금부터라도 ‘수술 등을 통해 생명을 직접 다루는’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등 3D과 의사에게 적정한 진료수가 보장 같은 인센티브 성격의 지원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또 의료의 수도권 편중 현상과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체계도 시급히 손보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여전히 복지개념이 강하게 남아 있는 지방의료의 붕괴는 도시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국가차원에서 의료의 편중 현상을 개선해야 한다. 지방의 중소 종합병원도 진료과목별로 특화해서 강소병원으로 육성해야 한다.
필자가 일하는 부산의 온종합병원도 세계화라는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극동 러시아 연해주와 베트남에 병원 부지를 확보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산업 수출을 모색하고 있다. 자동차나 반도체산업 못지않게 미래 성장 동력인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서 지방 중소병원에 대한 지방정부나 국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온종합병원장·부산대 의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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