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이 한국영화사를 새로 썼다. 그는 26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로는 처음이며, 아시아에선 일본 배우에 이어 두 번째다. 앞서 그는 같은 영화로 LA 등 미국 내 30여 지역 비평가위원회와 미국배우조합, 영국 아카데미로부터도 연기상을 받았다. 세계 영화계가 윤여정의 연기력을 인정한 셈이다. ‘기생충’의 칸, 아카데미 정복에 이어 또 한번 한국 영화예술의 저력을 입증한 쾌거여서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다.

윤여정의 쾌거는 끊임없는 도전과 단련이 낳은 결과다. ‘바람난 가족’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등등. 그는 출연한 영화들에서 매번 새로운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 감독들의 찬사를 받았다. 은퇴 시기를 넘긴 70대의 연령은 그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미나리’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초저예산 영화라 출연료가 적어 미국 촬영 현장에 매니저도 못 데려갈 정도였지만, 작품성에 끌린 그는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 임상수 감독은 그래서 윤여정의 아카데미 수상을 “자유롭고 젊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이뤄낸, 부러울 정도의 짜릿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코로나19로 실의에 젖은 국민에게 교훈과 용기를 주는 대목이다.

윤여정의 강인한 인생관은 ‘미나리’에서 유감없이 펼쳐졌다. 그가 연기한 ‘순자’는 미국 아칸소의 시골에서 새 삶을 개척하는 딸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위기 때마다 따뜻한 위로와 격려로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순자는 미나리와 같은 존재다. 어디서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뿌리를 내리는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간 미나리 씨를 심고 가꾸며 딸 가족의 ‘아메리칸 드림’ 실현을 후원한다. 이런 순자의 캐릭터는 이혼 등 숱한 시련을 이겨내고 국민배우의 입지를 다져가는 윤여정의 삶을 닮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윤여정의 연기는 그 삶에서 나왔고, 아카데미를 비롯한 세계 영화계는 이를 주목한 것이다. 윤여정의 수상은 곧 삶의 승리다.

윤여정의 가치는 수상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더욱 빛났다. 그는 “사람을 인종으로 분류하는 것은 좋지 않다. 무지개처럼 모든 색을 합쳐서 더 예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끌어안아야 한다”고도 했다. 아시아인을 겨냥한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과 폭력을 의식한 발언이다. 미국 사회가 윤여정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오늘날 미국의 발전과 번영은 전세계 이민자의 피와 땀이 일군 성과다. 이를 외면한 채 코로나 위기를 인종 문제로 오도하는 일탈이 안타깝다. ‘미나리’는 그런 문제 인식과 해결 시도가 대립과 반목을 증폭시키는 오류일 뿐임을 한인 이민 가족을 통해 잔잔한 영상언어로 풀어냈다. 포용과 사랑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메시지다. 윤여정은 영화에서 이 진리를 온몸으로 이야기했다. 영화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