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박카스 광고는 따뜻한 공감을 담았다. 격한 운동 뒤 귀갓길에 비어 있는 지하철 노약자석을 권하는 친구에게 “됐어, 우리 자리가 아니잖아”라며 턱걸이를 하는 장면은 지금도 기억된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좌석, “지킬 것은 지키는” 청년의 모습이다.
박카스로 유명한 동아제약이 면접자리에서 여성 지원자에게 “여자는 군대에 안 갔으니 남자보다 월급을 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부적절한 질문을 한 것이 알려지며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입대 신체검사에서 시력검사표를 큰 소리로 마음대로 읽으며 “꼭 가고 싶습니다!”고 했던 광고마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지킬 것은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군 복무를 하지 않으면 월급이 줄어들까봐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후 봇물 터지듯 유사 경험담이 쏟아졌다. 어떤 회사는 “결혼적령기 여성은 출산 문제가 있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하고, 또 다른 회사는 “미투를 방지하기 위해 여자를 뽑을 생각이 없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2021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맞나 싶을 정도의 성 차별적, 시대착오적 발언이다.
일단 ‘지킬 것은 지킨다’는 광고 카피대로라면, 엄연히 존재하는 법률은 지키는 것이 맞다. 대한민국 헌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고(헌법 제32조 제4항), 근로기준법도 ‘남녀의 성을 이유로 한 차별 대우’를 금지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6조).
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하거나, 혼인 임신 또는 출산을 퇴직사유로 예정하는 근로계약의 체결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범죄이고(남녀고용평등법 제37조 제1항),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하는 것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동법 제37조 제2항).
채용에서 남녀를 차별하거나,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용모·키·체중 등의 신체적 차이, 미혼 등을 조건으로 해서는 안되고(동법 제37조 제4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애초 이런 개인정보를 지원서에 기재하도록 하거나 수집해서도 안된다(채용절차법 제4조의3, 위반시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미투 때문에 여자를 뽑지 않는다는 건 성범죄를 걸리지 않게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재론의 가치가 없다. 반면 출산과 육아로 인한 퇴직은 기업 입장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채용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하고, 수년에 걸쳐 업무까지 숙달된 근로자를 잃는 것이어서 큰 손해일 수는 있다. 빈 자리를 메워야 하는 동료들도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헌법과 법률이 여자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하고 임신 육아로 인한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헌법과 법률은 국민투표와 투표로 선출된 대의기구인 국회가 민의를 반영하여 만든 것이다. 비록 내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 다수의 합의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법률로 정해진 합의의 내용은 단순히 페미니스트 운동과 적극적 평등정책의 배경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우리 사회는 출산과 육아는 물론 여성의 노동력까지 모두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우리 사회 기성 남성들은 “아이는 둘 이상은 낳아야 하고, 아이는 엄마가 잘 돌봐야 하며, 이제는 여자도 살림만 하지 말고 돈도 벌어 오길” 바란다. 이 세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를 만드는 것이 바로 위와 같은 법률이다. 기업과 동료 입장에서는 당장은 싫겠지만 지속 가능한 사회가 무너지면 기업도 일자리도 없다. 여성의 차별을 엄격히 금지하는 법률은 바로 이와 같은 사회적 필요와 합의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법이 그래서만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카스 광고에서 청년이 노약자석을 양보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배려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광고 속 그 청년처럼 이유를 생각하기 전에 마음에서부터 배려가 시작된다면 우리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다.
광고가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40대 중년이 되었을 그때 그 청년이 지금도 지킬 것은 지키며 살고 있기를 바란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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