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머리만 좋을 뿐 신체적 능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처럼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 두터운 털과 가죽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포유류보다 뛰어난 신체능력이 하나 있는데, 바로 더운 날 오래 달리는 능력이라 한다. 무더운 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거리 달리기에서 인류를 따라올 포유류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실제로 인간은 바로 그러한 능력으로 다른 동물들을 탈진시키며 사냥하고 살아남기도 했다.

끊임없이 오래 이어가는 장거리 달리기, 그것이 인류의 능력이다. 다른 동물들이 단숨에 강한 힘을 내거나 빠른 속도를 내면서 사냥하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 초원이나 사막을 한참동안 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면 어딘지 인생에 대해서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삶이란 마치 끝없이 달리는 일과 같아서 달리는 몸의 근육에 적응하고, 땀을 흘리면서 열을 식히며, 그 속에서 천천히 호흡하는 리듬을 잃지 않는다면 어쩐지 이 인생도 잘 완수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인류가 지닌 그 고유한 능력이 현대사회의 인생을 사는 일에도 깃들 수 있을 듯하다.

어느 밤 잠들기 전에 생각난 문장이 있었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내 삶에는 나름의 고생이랄 게 있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으니 10년 뒤, 20년 뒤라고 해서 고생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는 문장이었다. 삶이 이어지는 한 어느 시절이든 그 나름의 고생스러움은 있기 마련이다. 학업 스트레스든, 인간관계든, 사랑의 문제든, 가족이나 일에서 오는 고생이든 어떤 종류의 어려움은 인생 내내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찾아온다. 어릴 때는 친구 때문에 속상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청년시절에는 미래 걱정으로, 더 나이가 들면 부모와 자식의 일로 몸과 마음이 고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고생 끝, 행복 시작’ 같은 건 없다. 그 사실을 정말이지 잘 알아야 한다고 느낀다.

이 시절의 고생이랄 것은 이 시절이 끝나고 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절에는 그 나름의 다른 고생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시절의 어떤 고생만 끝내면 인생에 전례 없는 행복의 시절이 찾아오리라 믿는 건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인 것이다. 그보다는 이 시절 안에 있는 어떤 ‘고생’에도 불구하고 그와 비슷한 고생들이 계속 이어질 거라는 사실을 꽤나 과감하게 인정해야 한다. 결국 ‘그런 고생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 한다. 고생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아마 인생 내내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고생의 종류가 바뀌는 게 행복해질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겠지만 그런 깨달음은 ‘고생의 종류가 바뀌기 전’에도 가능하다. 결국 오늘 있는 고생 번뇌 걱정 어려움 같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틈에서 얻는 행복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

적도 부근의 무더위 속에서 어느 포유류보다 오래 달리던 인류의 마음이라는 것도 그랬지 않았을까 싶다. 달리는 순간에의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근육의 어떤 부분은 아프고 숨이 차오르며 폐에도 고통이 느껴지고, 당장 엎드려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가장 긴 거리를 달릴 수 있었고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다른 모든 동물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사냥하고자 하는 어느 동물이 지쳐 쓰러지면 그제야 멈추어서 긴 사냥의 끝과 저녁노을에 이르렀을 것이다.

삶이라는 것도 그저 달리고 달리다 보면 어느덧 그 저물녘에 이르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사막을 가로지르는 어느 오랜 삶을 하나 생각하면 이 삶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이렇게 아주 긴 마라톤을 하듯이 그렇게 달려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달리고 있다. 매일, 가장 느린 속도로, 그러나 가장 오랫동안 삶의 모든 고생들을 뛰어넘고, 지나치며, 삶의 마지막에까지 그렇게 달리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삶의 노을이 한 평생 잘 달렸다면서 진정한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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