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공사 직원들의 신도시 개발 예정지 투기 의혹으로 또다시 부동산 투기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가뜩이나 집값, 땅값이 치솟아 서민의 박탈감이 큰 상황에서 개발 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벌인 사건이라 더욱 국민 공분을 사고 있다. 부동산 투기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듯하다. 우리보다 국토 면적이 좁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조차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높지만 투기가 문제된 적은 없다. 부동산 소유에 대한 엄격한 제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동산에 투자해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진 국민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가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서너 차례 있었다. ‘복부인’이나 ‘떴다방’ 같은 신조어는 부동산 투기가 낳은 씁쓸한 사생언어다. 경기순환 패턴을 보면 땅이나 집을 대상으로 하는 투기는 대개 버블경제의 끝물에 기승을 부린다. 장기적인 저금리 정책이 지속되거나 과도한 경기 확장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고속 성장기였던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후반 재벌기업의 땅 투자가 급증한 적이 있다. 당시 경기 확장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자산가치 하락이 심화되자 기업들이 다투어 안전자산인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린 탓이었다. 결국 정부는 1990년대 초 비업무용 부동산 처분을 유도하기 위해 세금을 대폭 강화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요즘 금값이 치솟는 것도 코로나19 이후 과도하게 풀린 통화량으로 유동자산 가치의 하락이 우려된 데 따른 위험회피 투자에서 빚어지는 파생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기가 심각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근본적인 이유는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 과밀 현상이다. 수도권은 항상 부동산의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이 상존할 수밖에 없어 투기심리가 잠재돼 있다. 국민의 집이나 땅에 대한 과도한 소유욕도 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출을 받을 때도, 직장에 취직할 때도, 결혼할 때도 어디에 어떤 크기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지 따지니 부동산 소유욕을 더욱 키운다. 여기에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삼아 투기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투기 조장에 한몫한다. 사실 현실적으로 부동산 투기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기란 어렵지만, 정부의 적절한 규제는 정상적 경제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물론 정부의 지나친 규제나 통제는 사유재산권을 제한하거나 경제 흐름을 경직시킬 우려가 있다. 하지만 과도한 투기 현상을 방치하면 예상치 못한 경제적 부작용을 초래한다. 부동산은 다른 경제재와 달리 재생산이 불가능한 유한재이므로 자본 세력이나 집단으로 소유가 집중되면 극심한 가격 왜곡과 시장 교란을 일으킨다.

부동산 투기로 인해 발생하는 비정상적 경제현상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본시장을 왜곡시켜 빈부의 격차를 극대화시킨다는 점이다. 특히 부동산은 지대론에 따른 불로소득의 원천이어서 집단적인 계층 분화를 초래하고 국가 이데올로기를 분열시켜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트린다. 여기에 부동산 가치가 곤두박질치게 되면 거품 붕괴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후유증도 남긴다. 부동산은 공급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른 가격 등락이 극심하다.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이미 2020년 초반부터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2015년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취한 이후 근 6년 동안 이어지면서 시중자금이 급증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막대한 돈이 시중에 풀려 부동산은 5년 전에 비해 50% 가까이 상승했다. 부동산 구매의 행태를 보면 대부분 금융대출에 의존해 가격이 하락하면 파산이 속출할 수 있다. 2008년 미국에서 벌어진 모기지 사태도 부동산 침체에 따른 후폭풍이었다.

집값이나 땅값은 금리 상승기 전후로 급격히 하락하는 현상을 보인다. 제로금리에 근접했던 미국 국채금리가 올초부터 상승한 상황이라 부동산 거품이 붕괴될 시점이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부동산시장에서 불패신화로 알려진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 매물이 최근 조금씩 쌓여가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상적 경제시스템의 작동을 위한 정부의 선제적 부동산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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