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 찾기’. 인류 문명사를 한 마디로 요약할 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자원·노력·시간이 적게 들면서도 이득이 되는 성질을 뜻하는 ‘경제성’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가격에 비해 제품의 성능이 얼마나 좋은 지 ‘가성비(價性比)’를 따지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런 인간의 속성은 항로 개척사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잇는 해상 실크로드의 관문인 수에즈 운하가 대표적인 예다. 수에즈 운하의 필요성은 기원전부터 제기됐으나, 토목 기술의 부족으로 기원후 18세기가 흐를 때까지 건설할 엄두를 내기 힘들었다. 꿈을 이룬 건 1869년. 런던~봄베이를 기준으로 유럽~인도 항로(아프리카 남단 희망봉 경유)의 거리가 2만1400㎞인데, 수에즈 운하 건설로 거리를 1만1472㎞로 단축할 수 있었다. ‘항로 혁명’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욕망 충족에는 미흡했다. 수에즈 경유 항로보다 더 짧은 시간에 중국 등 동아시아로 갈 수 있는 뱃길, 북극항로 개척이 또 다른 소망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그 일은 목숨이 수십 개 된다 해도 이루기 힘든 난제였다. 공중으로 치솟는 순간 얼어버리는 물보라, 난로 앞에 있어도 등에 서리가 하얗게 덮이는 북극의 강추위와 빙하가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인류가 도전한지 400여 년 만에 스웨덴 출신 노르덴시욀드(1879년, 북동항로)와 노르웨이 출신 아문센(1906년, 북서항로)이 각각 북극항로를 개척했지만,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데서도 그 험난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북극항로의 상용화에 박차가 가해지고 있다. 최근 화물선 에버기븐호의 좌초로 수에즈 운하가 막혀 세계적인 물류 마비 현상이 벌어지면서다. 북극 개발을 전략적 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러시아의 북극 개발 책임자는 “북극항로를 수에즈 운하의 대체 항로로 개발해야 한다.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북극항로 개발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우려가 크다. 온난화가 개발 촉진 조건이어서다. 실제 러시아는 온난화를 바란다. 러시아뿐만 아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정 체결 이후부터 지난해까지 세계 60개 은행이 4538조 원을 온난화의 최대 요인으로 꼽히는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했다.

지름길은 단기 경제성을 높일 순 있지만, 지구온난화 부작용에서 보듯 장기 경제성을 보장하긴 어렵다. 코로나19 역시 단기 경제성 추구의 폐해가 아닌가. 수에즈 운하 선박 좌초사건과 북극항로 대체 기대가 인류 문명의 향방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부른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