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맨해튼은 세계적인 금융중심지이자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고급 주택가이다. 섬 동쪽 어퍼이스트사이드 지역이 특히 부촌이고, 파크애비뉴 70번가는 그 중 으뜸이다. 웬즈데이 마틴이라는 여성 인류학자가 이곳 삶을 관찰해 기록한 책을 보면 핵심지구의 최고급 아파트는 돈이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없다. 입주자 운영위원회가 신분과 재정상태를 따져 허락해야만 가능하다. 재력은 물론이고 취향과 습속이 최상류층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15~16년전 부산의 강남이라 불리는 해운대 마린시티가 막 조성될 무렵이다. 주변에 우후죽순 들어선 금융회사 PB센터 직원에게 거주자들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아파트 가격도 높지만 관리비가 워낙 비싸 상속받은 자산 없이 당대 전문직 벌이로는 힘들다. 특이한 건 별다른 직업이 없는 사람도 많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현대산업개발이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로 고급 아파트 분양에 들어갔을 때다. 근처에 타워팰리스가 있는데 이 정도 고가에 희망자가 또 있을까 회사측도 처음엔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집주소를 명함에 새기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주소가 신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피트니스나 백화점 호텔 등에서 VIP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 우뚝 솟은 엘시티는 한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마천루다. 일부 펜트하우스는 분양가가 서울을 뛰어넘어 처음부터 화제를 몰고 다녔다. 하지만 세상이 더 시끄러워진 건 의혹으로만 떠돌던 각종 비리가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서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 일가가 하필 엘시티 주민이라는 사실은 세간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하다. 매입과 거주 경위를 둘러싼 논란과 상관없이도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도 자신의 정치적 거점인 부산엔 전세 뿐이고 서울에만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현 야당세가 우세한 부산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분투하는 그이기에 다소 의아하게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을 벗어나지 말고 버텨라.” 다산 정약용이 전남 강진 유배 당시 자식들에게 보낸 글이다. 한국에서는 서울, 서울에서는 강남, 부산에서는 해운대가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시장 후보라고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아선 안된다. 단지 그들이 평소 지방 홀대를 비난하고 서민 위주 정책을 목소리 높여 주장해왔음을 기억할 뿐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