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윤여정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연기상 후보에 이름을 내건 그를 두고 ‘윤며들다’는 신조어가 생겼다. 윤여정에게 스며들다는 의미다. 속으로 배어들거나 마음 깊이 느껴질 때 스며들다란 말을 쓴다. 50년 연기 내공에 대한 헌사다.

영화 ‘미나리’의 성공은 국적·시대·언어를 초월한 가족 이야기에 윤여정을 비롯한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지면서 이룬 것이다. 하나 더하자면 영화 전체 배경인 초록 이미지다. 아칸소의 시골 풍경이, 윤여정이 만든 미나리 밭이 온통 초록색이다. 이는 곧 희망이요 조화요 끈기다. 윤여정의 실수로 창고가 불타며 파국을 맞는 듯 했으나 그 미나리 밭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한다. 초록은 평화와 인내, 생명과 조화를 나타낸다. 우리 눈을,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의 색이기도 하다.

‘그린워킹 문화혁명’(Green Walking)을 기치로 한 시민 걷기 캠페인에서 비롯된 갈맷길도 초록에 바탕한다. 자연과 생명, 성찰과 녹색 성장이란 그린워킹의 키워드는 사색과 힐링과 공감의 갈맷길을 만들었다. 2009년 6월 7일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최초로 ‘걷고 싶은 도시’를 선포하며 출발한 갈맷길은 9개 코스 21개 구간 278.8㎞다. 갈맷길은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을 결합한 합성어이다. 또 짙은 초록색을 뜻하는 우리말 ‘갈매’와 ‘길’의 합성어이기도 하다. 그만큼 갈맷길의 지향점이 뚜렷하다.

갈맷길이 전국 걷기여행길 중 두 번째로 사랑받는 길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2020 걷기여행 실태조사’ 결과다. 전국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제주올레가 1위, 갈맷길이 2위란다. 갈맷길은 직전 해엔 17위였다. 특히 코로나 시대 선호하는 야외 관광지로 걷기여행길이 첫손에 꼽혔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할 힐링 트래블 대상지로 갈맷길의 재발견이다.

윤여정이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영화에 데뷔한 이후 차곡차곡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듯이 갈맷길도 2009년 이후 부산 시민과 부산시가 공들여 가꾸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2013년 완보인증센터 가동 이후 갈맷길을 완주한 1924명과 9개 코스 21개 구간을 이용한 수많은 길동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겨우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잎이 나기 시작했다. 연두색과 초록색의 절묘한 조화다. 꽃초록이라 불러도 될 듯하다. 그 자체가 꽃처럼 싱그럽기 때문이다. 갈맷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