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처음 가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부산에서 가장 큰 섬이란 점. 가덕도 면적은 21.36㎢로 14.13㎢인 영도보다 1.5배가량 넓다. 그리고 최고봉인 연대봉(459.4ｍ) 정상에서 낙동강이 남해와 만나는 장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 전 일이다.

그 다음부터 서울에서 온 기관장을 만날 때 이렇게 말했다. “부산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금정산과 장산, 그리고 연대봉에 올라 이 세 곳을 꼭짓점 삼아 부산을 입체적으로 파악하시라.” 한반도 뼈대의 끝인 금정산에서 땅의 기운을 알고, 남해와 동해를 아우르는 장산에서 바다를 이해하고, 낙동강이 만든 기회의 땅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연대봉을 각인해야 부산이 얼마나 대단한 도시인지 절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어와 지리를 제대로 배운 사람치고 애국자가 아닌 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그것이 부산의 체화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듯 가덕도 주변의 변화는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세계 5위 물동량을 자랑하는 부산신항을 끼고 있는 데다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개통으로 섬 아닌 섬이 된지 오래다. 배를 타고 가덕도에 도착해 연대봉 산행 후 마지막 배를 놓쳤음을 알고 발을 동동 굴렀을 만큼 일정이 만만찮았고, 비싼 배삯을 치르고 주민의 배를 빌려서야 섬에서 나올 수 있었던 20년 전 추억은 끄집어 내기도 멋쩍다.

지난 주말 가덕도 연대봉을 찾았다. 그 전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전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배를 타고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살펴보며 신공항 건설 의지를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연대봉의 봉수대 이야기를 동행한 인사들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연대봉에서 올린 봉화가 한양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덕도의 지리적 장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젠 연대봉에서 미래를 밝히는 봉화를 올려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균형발전의 신호탄’이라는….

연대봉 봉수대 앞에 ‘임진왜란 최초 발견 보고지’란 안내판이 있다. 가덕도는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을 방어하는 중심지였으며, 임진왜란이 터진 1592년 4월 13일 대마도에서 부산포로 침략해오는 왜군 함대를 최초로 발견한 장소가 가덕도 연대봉과 응봉이라고 적혀 있다.

횃불과 연기로 신호를 전하는 봉수(烽燧)는 조선 시대 통신 수단이다. 함경도, 평안도, 전라도, 그리고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급보를 전하는 유용한 방법이었다. 대략 1시간당 100㎞의 전파력을 가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효과를 발휘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산꼭대기 봉수대를 관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다. 게다가 문 대통령 이야기와 연대봉 안내판엔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있다. 다대포에서 경상도~충청도~경기도를 거쳐 한양으로 향하는 주요 봉수 노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과연 연대봉 봉수대에서 피워 올린 봉화가 임진왜란을 알린 것이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대봉 봉화는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 비전이어야 마땅하다. 2002년 돗대산 참사 후 20년 만에 ‘24시간 가동할 수 있는 안전한 공항’이란 부산 울산 경남의 염원을 실현할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공항은 부산만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남의 미래를 여는 희망의 열쇠다. 부울경의 밝은 미래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 바로 균형발전의 선순환이다.

지도를 거꾸로 놓으면 한반도가 태평양으로 향하는 관문이 되듯이 가덕신공항은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다. 부산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건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하는 의지이자 실천이다. 당장 특별법 취지를 살려 가덕신공항은 2030부산월드엑스포의 관문 역할을 해야 한다. 그 과실을 동남권이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건 동남권 메가시티란 새로운 상생 전략 덕분이다. 이렇게 연대봉에서 올린 균형발전의 봉화가 전국으로 퍼져야 수도권 일극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이를 두고 딴소리를 하는 사람에겐 연대봉에 한번 와보길 권한다.

연대봉에서 가덕신공항 예정지를 내려다보며 2005년 4월 방문했던 일본 주부(中部)국제공항을 떠올렸다. 그해 2월 개항한 주부공항은 나고야시에서 전철로 30분 거리였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인공섬에 들어앉았고, 나고야 지역 항공화물 수요에 초점을 맞췄으며, 공사비가 5조~6조 원대였다. 할 수만 있다면 주부공항을 그대로 가덕도로 옮겨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지금 주부공항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공항으로 자리잡았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오는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용이 아니라 2030월드엑스포를 넘어 미래 부산 100년을 위한 밑거름으로 만드는 건 부산 사람의 몫이다. 균형발전이란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야 가능하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