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졸업시즌이다. 저마다 자신이 공부한 모교를 떠나는 의식이 매번 치러지는 교정엔 이별과 함께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마침 필자도 고등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터라 이런 졸업식의 풍경이 낯설지 않고 또한 그 모습도 참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한다. 예전 세대엔 고교졸업이 학창시절의 마지막이 되는 친구들도 제법 있어 그야말로 아쉬움과 숙연함이 그 분위기를 지배했지만, 요즘은 대다수의 학생이 상급학교인 대학에 진학하기에 그런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문득 지난해 졸업했던 우리 반 학생들이 떠오른다. 당시 학년부장을 맡으면서 남학생 20명의 담임이기도 했던 그때, 이전엔 접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몇 년 만에 맡은 3학년이기도 했지만, 일단 학생 수가 너무 줄었고 진학률 또한 상당히 높아졌다. 90년대 중반 첫 3학년 담임을 맡아 입시 지도를 했던 반 아이들 숫자가 40명이 넘었던 것에 비하면 무려 절반 이상이 줄었고, 이에 반해 대입 정원의 감소폭은 미미하기만 했다. 결국 예전에 그렇게 진학하려 했던 4년제 대학을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인기 있는 중상위권 이상의 대학은 여전히 입학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게다가 대입전형의 변화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지 않고도 진학이 가능해졌다. 당시 우리 반 학생들 중 정시모집까지 포함해서 실제 수능시험 점수가 필요한 학생은 30%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수시전형에 내신이 반영되지 않는 3학년 2학기부터는 학교수업이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부산의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과연 대학진학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다. 대학이 어떤 곳이고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합의와 고민 없이 늘 해오던 관습에 우리는 너무 쉽게 길들여져 있지 않나 반문해보고 싶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시기에 대학은 일정정도 더 나은 취업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역할을 수행했음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과 함께 대학이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면서 이제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고교교육의 지향점이 여전히 대입을 위한 과정으로 편성돼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올해 처음으로 대입정원이 수험생의 숫자를 앞섰다. 2021학년도 대입지원자가 고3 학생과 졸업생을 합쳐 53만3941명으로 4년제 대학과 전문대를 합친 대입 정원 55만659명보다 1만6718명 적어짐에 따라 지역의 대학관계자들은 각 고교를 방문하며 학생들을 유치하는 일에 사활을 걸고 있고, 한편으론 수시전형에서 각 대학의 수능최저기준을 맞춰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수능이 필요 없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독려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수능을 필요로 하는 일부 중상위권 이상의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들을 위해 나머지 대부분의 학생이 불필요한 희생을 감수하는 이런 입시구조는 분명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앞으로 대학을 나오면 사회적으로 더 나은 기득권을 선점할 기회가 보장된다는 이전 시대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것 같다. 대학과 수험생 간의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역전되는 시점에서 선택의 키(key)는 바로 지원자인 고등학생들에게 있어야 하고, 대학입학도 취업과 성공의 도구가 아닌 학문의 목적이라는 순수한 자율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만이 지금 고등학교 교육도 입시 구조에서 탈피하여 그 본연의 새로운 모습으로 회복되리라 본다.
물론 이를 해결하는 데 산적한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자의 역량을 넘어서는 문제이기에 논외로 치더라도, 적어도 학령인구가 점점 감소하고 이에 비해 대학 정원은 이를 넘어서는 현실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고등학교 교육의 패러다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루소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올해의 졸업식은 학생들에게 좀 더 의미 있는 날로 다가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시인·부산 경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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