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또 일어났다. 지난번에는 9살 어린이가 여행가방 속에 7시간 갇혀 있다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이번에는 겨우 16개월 된 정인이가 복부에 가해진 강한 힘으로 췌장이 절단되고 복강 내 출혈 등으로 사망했다.

스웨덴에서도 얼마 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약물 중독자 부모가 출산과 동시에 양육을 포기하자 아이는 보모에게 맡겨졌고 보모의 슬하에서 아주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런데 아이가 3살인 2019년 부모는 다시 친권을 요구했고 이에 사회복지사 측은 부모의 양육역량 문제를 들어 반대했으나 고등법원은 친권에 무게를 둔 법에 따라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보내라는 판결을 내렸다. 부모에게 돌아간 지 9개월 만에 아이는 온몸에 멍이 들고 영양실조 상태로 사망했다. 두 사건 모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회가 꼭 막았어야 할 사건이다.

이 두 사건 후 한국과 스웨덴 정치권은 발 빠르게 대처했다. 한국 국회는 그동안 비난의 대상이었던 민법 제915조 자녀 징계권을 삭제함으로써 아동학대가 명확하게 금지되었다. 나아가 ‘아동학대 범죄 처벌 등에 대한 특례법’을 통과시켜 아동학대 신고 시 수사기관과 지자체는 의무적으로 수사·조사하고 피해아동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용이하게 했다.

스웨덴 의회는 친권을 약화시키고 부모의 양육 역량에 무게를 두는 형태로 법을 개정했다.

스웨덴의 경우 사회복지사 측의 판단이 옳았고 법의 문제였기 때문에 법 개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됐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경찰의 판단과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 이런 경우는 사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 평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할 수 있다.

하나는 지침(매뉴얼) 문제다. 아보전 직원이나 경찰이 사용한 지침이 정인이 사태와 같은 아동학대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 조사·수사하도록 하는지, 지침은 현실과 연구를 종합하여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실정에 맞게 만들어졌는지, 점수 시스템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등을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두 번째 신고 때 허벅지의 멍과 쇄골에 금이 간 것을 파악하고도 왜 전문 의사에 의뢰하지 않았는지, 왜 아동학대 점수가 양부모와의 분리 수준에 이르지 못했는지 등을 지침의 문제인지 평가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문제, 즉 담당직원의 전문성 문제다. 담당직원과 경찰은 아동학대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갖추고 있는지, 지침의 전체적인 요구와 의도를 잘 숙지하고 있는지, 다른 담당자가 조사·수사를 했어도 같은 점수와 결정을 내렸을지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신고 때 정인이를 진단한 소아과 의사는 정인이의 체중이 줄고 혼자 걷지 못할 정도로 영양상태가 불량하다는 진단을 내렸고 이에 경찰과 아보전은 분리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양부모의 강력한 반대로 사례관리란 조치만 내린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담당자의 전문성에 비추어 평가해야 할 것이다.

결국 세 차례의 학대 정황 신고 모두 양부모로부터 정인이를 분리할 정도의 점수가 되지 않은 것이나 양부모의 얘기만 듣고 내사종결 또는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이 지침의 문제인지 담당자의 전문성 문제인지 평가해야 될 것이다. 평가는 담당자의 책임을 묻는데 있기보다는 제도(지침)를 개선하고 사후 사례 학습을 통하여 담당자의 전문성을 제고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만약 지침의 문제라면 스웨덴에서 사용하는 ‘BBIC (아동의 필요성을 중심에 두고) 삼각모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모형은 가정에서의 아동폭력을 ‘아동의 성장·발달 과정’, ‘가정과 환경’, 그리고 ‘부모의 (양육)역량’이라는 세 측면에서 아주 세밀하고 깊이 있게, 그리고 즉각적으로 조사하게 하며 친권보다 아동의 필요와 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스웨덴 사회복지사 측이 법원과 다른 판단을 내린 것도 바로 이런 지침과 담당자의 전문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법과 제도 그리고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담당자)의 전문성이 어깨를 나란히 할 때 정인이 사태를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다.

前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스톡홀름대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