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빚쟁이였다. 군수까지 했던 아빠가 집안을 돌보지 않자 엄마가 구멍가게를 내어 생계를 책임졌다. 밑천이 없으니 일수를 찍어 가게 물건을 들여 놓았고 먹고 살다 보니 또 일수를 찍는 악순환이 반복 되었다. 매일 꼬박꼬박 찾아와서 돈을 긁어가던 일수쟁이를 보며 우리는 언제쯤 빚을 안 지고 살 수 있을까 암담한 처지를 한탄하곤 했다.

사람은 날 때부터 하늘 은행에서 부모님의 사랑에다 집과 학교와 직장을 장기 저리로 융자받는다. 열심히 살아가면서 갚으라고 빌려준다. 이 대출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갚아도 다 못 갚는다. 만약에 자포자기 하거나 일찍 명을 끊으면 하늘 나라에 가서 대출 원금에다 밀린 이자까지 다 갚아야 한다. 살아야 할 이유를 많이 만들어 성실하게 살면서 대출 원금을 갚으려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겐 이자가 면제되고 운이 좋으면 대출 원금까지 탕감 받을 수도 있다.

삶이 팍팍할 때 영화 ‘빠삐용’을 보았다. 주인공은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8번이나 탈출을 시도한다. 계속 실패하는 바람에 혹독한 벌을 받으며 14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있었다. 주인공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9번째 탈출에 성공하여 자유인이 된다. 주인공의 몸에 나비 문신이 있었는데 그게 불어로 ‘빠삐용’이다.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고 싶다는.

코로나는 타인과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 데나 다니는 것도 위험하다. 집 감옥에 갇힌 거나 다름없다.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국민 대다수가 집단면역이 되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다. 지긋지긋한 역병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갖고 강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 나약한 사람은 백신을 맞아도 안심할 수 없다. 자신의 체력은 남이 채워줄 수 없으니 스스로 다져 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때가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경제 활동이 무너져서 생존조차 위협을 받는다. 취업이 안 되고 결혼하기도 쉽지 않다. 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사람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 냉혹한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희망은 실낱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용기를 주는 책을 읽으며 마음속에 희망을 키워 나가야겠다.

죽음의 포로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술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헤어진 가족을 꼭 만나야겠다는 가족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다는 소박한 꿈, 중단된 학업을 계속하겠다는 향학열 등……. 어떤 의미든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절대로 죽을 수가 없다.

나는 20대 때 큰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노모를 내가 모시겠다는 마음으로 버텨내었다. 결혼에 실패한 누나가 맡긴 조카 두 명까지 데리고 큰형님 집에서 분가할 때는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다. 병색이 뚜렷한 약골에다 무일푼이었고, 딸린 식구가 셋이나 되었으니 결혼 조건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래도 빠삐용의 도전 정신을 떠올리며 죽음의 파도를 넘어 살아남았고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 나쁜 환경이 나를 구속했지만 일수쟁이한테 시달리던 엄마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살아야만 했다. 죽음의 먹구름이 몇 겹으로 에워싸도 살아야 할 이유를 갖고 있다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

엄마는 종종 말했다. 너 대학가는 거 보고 죽어야지, 너 장가가는 것은 보고 죽어야지, 손자는 보고 죽어야겠다. 그게 바로 엄마가 살아야 할 이유였다. 진짜로 엄마는 손자 손녀까지 다 보고 돌아가셨다.

코로나로 힘들지만 14년 동안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혼자만 독방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밥을 안 줘서 바퀴벌레라도 잡아먹어야만 하는 최악의 상황은 더더욱 아니다. 들로 나가서 나비처럼 날아보자. 다리 힘을 길러 하루 종일 숲길을 걸어보자. 비가 와서 앞이 막히면 아파트 계단을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보자. 그런 배짱이면 그 무엇인들 못하겠는가!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