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연이 걷힌 전장. 승자의 포효와 패자의 변명이 교차한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건 병가지상사. 냉정한 수읽기가 필요한 건 싸움이 현재진행형인 까닭이다. 미국 증시가 그렇다. 개인투자자, 개미들이 월가의 헤지펀드를 물리쳤다고 난리다. 이른바 ‘게임스톱 혁명’이다.

게임스톱은 미국의 비디오 게임 유통업체다. 온라인 물결에 휩쓸려 내리막을 걷던 이 업체 주가가 올들어 요동쳤다. 지난 12일까지 17~19달러 수준이던 주가는 29일 종가 기준 325달러로 16배나 올랐다. 공매도 세력과 개미들의 전면전이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주식을 다시 사서 갚는 방식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투자기법이다. 개미들이 떨어지는 주가를 받쳐냈으니 공매도 세력의 손실은 당연하다.

“게임스톱 주가는 20달러 수준으로 빠르게 추락할 것”이라고 장담했던 공매도 전문 헤지펀드 시트론 리서치 앤드루 레프트 대표는 “시트론 리서치는 공매도 리포트를 발간하지 않겠다”며 백기를 들었다. 시트론 리서치를 비롯한 공매도 세력의 손실 규모는 197억5000만 달러, 22조 원에 달한다. 반면 ‘대장 개미’로 불리며 개미들을 이끈 전직 보험회사 직원 키스 질의 금융계좌엔 3300만 달러, 370억 원이 들어 있다고 한다.

개미들의 구심점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reddit)의 주식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였다. ‘포효하는 키티’(Roaring Kitty)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키스 질도 이 토론방의 유명 인사다. 한 개미는 “당신의 모범이 수천명 평범한 사람의 삶을 바꿨다. 고맙다”고 추켜세웠다. 이를 두고 개미들이 자본과 정보로 무장한 월가의 헤지펀드를 물리친 증시 역사상 이정표가 될 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또 미국 금융 중심부, 월가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를 읽어내는 시각도 많다. 금융위기에 반발해 2011년 일어났던 대규모 시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를 떠올리는 것이다. 제2, 제3의 ‘게임스톱 혁명’이 점쳐지는 까닭이다.

한편 개미들의 게임스톱 거래를 일시 차단한 주식거래 앱 ‘로빈후드’는 큰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검찰 조사와 행정당국의 모니터링에 더해 의회의 청문회 소집 등 후폭풍이 만만찮다.

우리 증시는 미국 증시 상황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공매도 문제가 ‘발등의 불’이다. 동학 개미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하다. 무엇보다 개미들이 증시를 견인하고 있는 요즘이다. ‘개미 혁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