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주식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제조업을 비롯한 실물경제가 바닥을 설설 기지만 주식시장만큼은 아랑곳없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최고점을 돌파한 것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증시도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주식시장 활황세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전문가들도 쉽게 예측하지 못할 정도다. 주식시장의 열기 탓인지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 얘기다. 뉴스와 인터넷 검색 순위에도 주식 관련 단어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여파로 주가가 급락한 시기에 증시에는 ‘동학개미’라 불리는 개미군단은 30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미국 월가 집계로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이른바 ‘G4‘ 주식시장에 작년 4월 이후 신규 유입된 개인 돈은 줄잡아 30조 달러에 달한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한대로 풀린 돈과 초저금리의 비호 속에 개미군단의 폭발적 매수세가 겹치고 있다.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세계 증권가에는 여느 때처럼 ‘거품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국의 유명 경제 분석가인 데이비드 로젠버그는 “저금리와 돈 살포로 치솟은 세계 주식시장은 거품 속에 빠져들었다”고 분석했고, 월가의 투자제왕으로 불리는 블랙록의 경영자 래리 핑크도 “월스트리트는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위험 구간에 들어섰다”고 경고했다. 주식시장이 추가 상승할 경우 증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품 논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주가 상승기면 불거져 나오는 거품 논쟁은 주식시장이 가진 두 개의 상반된 이론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거품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은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파생 금융시장이라는 점을 든다. 실물경제가 활기를 띠면 주가는 상승하고, 실물경제가 악화하면 주가는 하락한다는 논리다. 실물경제가 침체된 상황에서 막대하게 풀린 돈의 힘으로 부풀려진 시장은 거품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대론자는 코로나 사태로 주식시장이 과거와 다른 뉴 노멀(New Nomal)의 새 시대를 맞고 있다는 주장이다. 실물경제지표와 자산가치가 과거의 잣대였다면 현재는 유동성과 기대심리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몰아친 2020년에 OECD 회원국의 평균 GDP가 5% 하락하자 주식시장은 50% 급락했다. 반면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가 5%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자 주식시장은 80% 상승하고 있다. 자산가치나 이론가치보다 투자자의 보상 심리가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반대론자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점은 경제학자나 이론가들이 거품론을 주장하는데 반해 현실 투자자는 반대론자가 많다는 점이다. 이론을 중시하는 경제학자의 눈에는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주식시장이 환상적 기대심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고삐 풀린 통화량이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면 결국 주식시장의 거품은 급격히 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론자는 주식시장이 이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만약 거품론이 절대적 잣대라면 주식시장은 결코 고점을 넘을 수 없고 항상 박스권에 갇혀 움직여야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든다. 세계 주식시장의 역사를 보면 대공황, 월남전, 오일쇼크,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시기에 단기 충격을 맛보긴 했어도 장기적인 상승세는 유지해왔다. 미국 다우지수는 130년 동안 300배 넘게 올랐고,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도 통계가 시작된 40년 동안 30배나 상승했다.
사실 경제이론과 현실경제가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주식시장의 거품론도 이론적으로는 설득할 수 있지만 주식시장을 온전하게 설명하긴 어렵다. 오죽하면 ‘신(神)도 내일의 주가는 모른다’고 했을까. 대공황 탈출의 경제이론을 제시한 케인즈도,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 연준(Fed)의 총재도 주식투자에 만큼은 큰 손실을 보았다는 얘기도 있다. 주식시장은 경제이론과 환상심리가 혼재되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차원이 다른 세상일지 모른다. 주식투자 격언 중에는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시세에 몸을 맡겨라”는 속설이 있다.
투자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은 주식시장의 거품은 ‘투기’이고, 이론은 ‘투자’라는 사실이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투자자의 몫이지만 주식은 투자의 대상이지, 투기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재벌닷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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