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작년 4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불쑥 말했다. “3040세대를 못 잡으면 2년 후 대선을 치를 수 없다. 가급적 70년대생 중에서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 좋겠다.” 차기 대선 주자의 스펙으로 ‘1970년대 태어난 40대 경제전문가’를 제시한 것이다. 제1야당 대표의 이 발언 이후 잠시동안 이런저런 이들이 후보감으로 오르내리면서 포털 검색창을 장식하고 관련 기업의 주가가 뛰었다. 스스로 그런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한 당사자도 엉덩이가 들썩들썩 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얼마나 진지한 전략적 장고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팔순 넘은 노정객이 던진 세대교체라는 화두는 당연하지만 잊고 있던 어떤 진실을 새삼스레 돌아보게 했다. 그건 ‘기득권 타파’라는 명분을 자기 세대만의 전유물인 양 휘둘러온 이른바 ‘86세대’ 또한 이미 기득권이란 사실일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메아리일까.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부산과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에서 497세대가 본격적으로 용틀임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 말이다.
당장 잘 나가는 행정관료직을 과감히 벗어 던진 박성훈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이 71년생이다. 경기도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고향에서 새롭게 터전을 모색하는 이언주 전 의원은 이보다 한살 어린 72년생이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박형준 동아대 교수를 바짝 뒤쫓으며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3선 의원 출신 선배들을 모두 따돌리는 만만찮은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497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는 여당도 다르지 않다. 성추문으로 시작된 보선의 성격상 박인영 전 부산시의회 의장의 출마 여부는 한동안 지역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다. 소신있는 발언으로 인상적인 의정활동을 펼친 김해영 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하기까지 빠지지 않고 이름이 거론됐다. 77년생 동갑인 이들은 선두에 있는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보다 10살 이상 어리다. 하지만 본인 역량에 따라 앞으로 지역 내 여당 차기 주자로 얼마든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오신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나 더불어민주당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 역시 70년대생이다.
497세대의 국회 진입은 그들이 30대였던 17대부터다. 달랑 1명으로 시작했지만 18대 4명(1.3%), 19대 10명(3.3%), 20대 19명(6.3%)으로 조금씩 늘었고 21대에선 42명(14%)까지 불어났다. 174명(58%)이나 되는 86세대 선배에 비하면 세력에서 한참 밀리지만 의미 있는 성장세다. 초선이지만 부동산 5분 발언을 통해 일약 서울시장 후보감으로 부상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나, 비록 원외지만 노회찬·심상정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 노력 중인 김종철 정의당 대표 또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네 멋대로 하라’는 30여년 전 X세대 출현을 주목하며 사회학자들이 붙인 구호다. 신인류라는 별칭답게 기질 자체가 이전과는 판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호황기에 태어난 덕분에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다. 교복 없는 두발의 자유도 마음껏 누렸다. 깻잎머리 중고생 시절 겪은 6월 항쟁은 그저 거리에 자욱했던 최루탄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학생운동이 끝물일 무렵 입학한 대학에서는 사회보다 자기의 문제에 보다 천착했고, 해외여행 자유화의 수혜 아래 나라 밖으로 쉽게 눈을 돌렸던 첫번째 세대다.
밝고 진취적이어서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지만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취직의 기쁨도 잠시 곧장 IMF 사태를 맞았고, 겨우 자리를 잡을 무렵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작년엔 이 세대가 속한 40대의 고용률이 21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일터에서 쫓겨난 것이다. 내 집 보유율도 40대에서 유독 줄었다. “사회 각계 각층에서 여전히 장기집권 중인 86세대와 치고 올라오는 20, 30대 밀레니얼세대 사이에서 제대로 빛도 못 보고 조기 강퇴당하는 ‘낀세대’가 돼버렸다”는 자조가 이들에게서 나오는 이유다.
물론 나이가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부모보다 그 시대를 닮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최다 유권자층을 형성하는 그룹이 바로 40대다. “한국 역사상 진정한 첫 개인주의 세대” “열등감이나 편견 없이 선진 외국인을 대하는 세대”라는 평을 공통적으로 듣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겐 빈곤에 대한 트라우마도, 이념의 과잉도 없다. 대안을 제시하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면 얼마든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497의 부상이 꽉 막힌 진영논리로 나라를 두 동강 내고 공동체의 미래까지 갉아먹고 있는 정치판에 활로가 될지 지켜보려 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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