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 ‘중구난방 상태’라고 답할 수 있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에 익숙한 까닭이다. 하지만 배가 산으로 갔다고 무조건 그렇진 않다. 의도성 여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계획적으로 의도했다면 결과가 판이하다는 이야기다. ‘발상의 전환’. 역사적으로 이를 증명하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동로마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1453년은 ‘로마 2000년 영화’에 종지부를 찍은 해다. 당시 투르크 군을 이끈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남·북·동 3면이 바다와 절벽으로 둘러싸였고 서쪽만 육지로 연결된 ‘천연 요새’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적잖은 애를 먹는다. 서쪽 역시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콘스탄티누스 성벽 등 2중 성벽과 산으로 둘러싸였으니 난공불락이었다. 그나마 북쪽 좁은 해역인 ‘금각만’이라도 장악하면 포위 공격을 펼칠 수 있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제노바에서 파견된 동로마 지원 함대가 포진한 상태였고, 적 함대 출입을 막는 만 입구의 해상 쇠줄도 건재했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메흐메트 2세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린다. 남쪽 해상의 배들을 산 너머 금각만 깊숙한 곳으로 옮겨 제노바 함대를 역습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전사에 전무후무한 전술이다. 술탄은 즉시 은밀하게 행동에 돌입했다. 수천 명을 동원해 통나무를 잘라 거대한 썰매를 만드는 한편 토목 인부를 대거 투입해 경사진 산길을 평탄하게 넓혔다. 이런 준비 동작을 들키지 않으려고 쉴 새 없이 포탄을 퍼 부었다. 준비가 끝나자 배가 올려진 썰매를 수백 마리의 물소떼가 끌고 군인 수천 명이 밀어서 산을 넘었다. 배 70척을 산 너머로 옮긴 이 희대의 작전은 하룻밤 만에 완료됐다. 방심한 제노바 함대가 유령처럼 뒤에서 등장한 투르크 전함에 혼비백산하며 무너진 것은 당연했다.

이 이야기는 창조적 리더십과 혁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국가든, 도시든 경쟁력을 가지려면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리더가 필요하다. 리더십의 가치와 생명력이 극대화 되려면 모방적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그래서 특히 석 달 앞으로 다가온 부산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들에게 그런 면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많이 아쉽다. 어디선가 본 듯한, 누군가를 모방한 듯한 공약과 정책 투성이다. 정식 출사표를 내지 않은 여권 인사들은 제쳐 두더라도, 10명 넘게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야권 인사들 가운데 여론조사 상위권을 달리는 이들의 대표 공약부터 살펴봐도 그렇다

박형준 예비후보의 제1호 공약은 ‘부산형 15분 도시’이다. 도시를 소규모 생활권 단위로 나눠 주거 문화 건강 관련 공공·편의시설을 조성하고 집에서 15분 내에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해 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개념은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의 이론으로,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이미 적용되고 있다. 속도와 개발 위주 도시가 아닌 환경과 인간 친화적 저속 도시로 재편해 ‘탄소 제로’를 실현하자는 개념이다. 파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파리 안 이달고 시장의 재선 공약이 ‘15분 도시’였다. 캐나다 오타와, 호주 멜버른, 미국 디트로이트, 영국 런던 등도 도입했다. 서울시 역시 지난해 12월 ‘서울혁신주간’에서 ‘15분 도시’를 주요 주제로 다뤘다. 새로운 것 같지만,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부산형’이라는 전제를 달았는데, 가덕신공항~북항~동부산을 혁신형 교통수단인 ‘어반루프’를 통해 15분 내에 연결한다는 개념을 추가했을 뿐이다. ‘융합적’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겠으나, 두 개념을 섞은 제1호 공약이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언주 예비후보는 저서와 도시 비전부터 새롭다고 하기엔 무리다. 저서 ‘부산독립선언’의 제목부터 2009년에 출판된 책과 동일하다. 이 책에 담긴 비전인 ‘싱가포르를 뛰어 넘는 태평양 연안 도시국가 건설’ 개념 역시 2009년 출판된 도서의 핵심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싱가포르 생활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우연 치고는 참으로 공교롭다.

이진복 예비후보의 남항 일대 인공섬 조성 계획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필요성이 높고, 예전의 개념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미 1980년대 중반 나왔던 ‘맨해턴을 능가하는 남항 일대 인공섬 조성’ 개념과 큰 차이를 못 느낀다.

물론 유권자들이 공약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인성, 소통 능력, 걸어온 길, 나이와 외모, 정당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후보들의 창조적 혁신 리더십 유무는 도시의 운명과 직결된 문제여서 반드시 짚어볼 문제다. 부산이 ‘창조도시’로 나아가느냐, ‘모방도시’로 뒤처지느냐는 리더십에 달렸다. 배를 산으로 보낸 ‘혁신’을 보여준 메흐메트 2세처럼 창조적 마인드를 갖춘 시장의 출현이 그립다. 아울러 그런 시장을 뽑을 줄 아는 시민의 혜안이 꼭 필요한 시기다.

논설위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