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0년대 어느 날, 이탈리아의 청춘남녀 10명이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근교의 피에솔레 언덕에 모였다. 그들은 매일 각자 한 편씩 10일간 모두 100편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첫 번째 날 이야기를 보자. 한 프랑스 상인이 유대인 친구에게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권유한다. 교황청을 구경하고 돌아온 친구는 그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기독교 성직자들이 뇌물 협잡 매춘 남색 등 온갖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데, 그러고서도 기독교가 망하지 않는 건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댄다. 지상에 신국(神國)을 건설하겠다는 중세 교회권력의 허위에 대한 풍자가 자못 신랄하다.

여섯 번째 날 이야기의 주제는 여성 인권이다.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남편한테 들켜 고소당한 유부녀가 되레 법정에서 큰소리를 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만인의 동의 하에 만들어야 하는데, 나를 법정에 세운 법은 여성을 고려하지도 여성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고. 현대 사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시각이 진보적이다. 조반니 보카치오(1313~1375)는 이 이야기들을 묶어 책을 펴냈다. ‘10일간의 이야기’라는 뜻을 가진 ‘데카메론(Decameron)’이다. 소설 속 청춘남녀는 보카치오의 친구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들이 사회적 거리를 두며 당대를 성찰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렇게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갔다. 데카메론은 그 통로였다.

코로나19는 데카메론을 소환한다. 670여년 전 피에솔레 회동과 같은 성찰이 필요해서다. 비록 5인 이상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진 상황이지만, 랜선 모임을 통해 집단지성을 발휘한다면 ‘코리아 데카메론’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성찰 소재는 널려 있다. “죽어야만 나간다”는 요양병원의 비극을 먼저 살펴보자.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0시 기준 전체 코로나 사망자 817명 중 요양병원 사망자가 24.1%(197명)를 차지한다. 부천 효플러스요양병원의 경우 166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41명이 숨졌다. 울산 양지요양병원에서도 167명의 확진자 중 24명이 사망했다. ‘죽음의 병동’이나 다름없다.

근본 원인은 병상 부족이다.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려면 음압 병상 등 관련 시설과 전문 의료진이 있어야 한다. 요양병원은 그런 능력이 없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만 한 채 전담병원에 병상이 생길 때까지 중증 환자를 방치한다. 이송을 기다리는 사이 환자들은 연로한 데다 기저질환이 있어 병세가 악화돼 숨진다. 사실상 손놓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물론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 지난해 2월 청도 대남병원 집단감염 때부터 요양병원 감염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는데도 아직 실행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의료계도 결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4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치(3.4명)를 밑도는 의사 부족국이다. 그런데도 의료계는 정부가 지난해 7월 의대 정원을 늘려 지역의사제를 실시하려고 하자, 휴진과 의사 국가고시 거부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과거 의약분업 갈등이나 지난해 사태에서 보았듯이, 의료계는 ‘밥그릇’ 문제만 나오면 서슴없이 환자를 볼모로 파업에 나선다. 이런 상태에선 요양병원의 비극을 막기 힘들다. 국민 건강권이란 공익을 앞세우는 마음이 아쉽다.

임대료 문제도 ‘코리아 데카메론’에 특기할 사안이다. 소상공인은 코로나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계층이다.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로 매출이 급감해 파산 위기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활비도 못 버는 형편에 임대료는 빚을 내 꼬박꼬박 내야 하니 죽을 맛이다. 더군다나 소상공인의 94.4%가 지난해와 같거나 지난해보다 오른 임대료를 물고 있다. “임차인은 방역을 위해 장사를 멈추는데, 왜 임대료는 멈추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양 등 경기지역 7개 지자체는 그 대안으로 재난 시 임대료 감면을 의무화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주장한다. 정의당은 건물주, 임차인, 국가 3자가 임대료를 분담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건물주의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반발이 거세다. 하지만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임차인이 파산하면 공실이 늘어나 건물주도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런 사례가 쌓이면 결국 부동산 경기 침체를 초래한다. 건물주와 국가의 고통분담은 이런 시장 실패를 막는 장치가 된다. 고통분담을 통해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을 도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코로나 시대의 핵심 화두는 공존과 상생이다. 한 사람이라도 코로나에 감염돼 있으면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매일 확인한다.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화엄 정신을 코로나 위기가 일깨운다. ‘코리아 데카메론’에 구현해야 할 철학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