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스톡홀름의 12월은 무척 어둡다. 위도 60도에 위치한 스톡홀름은 여름이면 낮이 길어 백야에 가깝지만 겨울이면 반대로 하루 종일 어둡다가 깜깜해진다. 오전 9시에 해가 떠서 오후 3시 전에 진다. 날씨가 맑으면 그나마 창백한 해라도 구경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잿빛 날씨가 계속된다. 예전엔 눈이 많이 왔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요즘은 계속 진눈깨비가 내린다. 눈이라도 내려 대지를 덮으면 세상이 훤해지는데 눈이 귀해지니 어둠은 짙기만 하다.
올해는 이 어둠을 더 짙게 하는 게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다. 지난봄에 많은 노인들이 죽어나갔다. 11월 들어 코로나 2차 파동이 시작되며 또 노인들이 죽어 나간다. 의료진들의 사투가 눈물겹다.
정부와 방역당국은 연일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다그친다. 개인위생과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고 재택근무를 종용한다. 요양시설의 부모 방문도 삼가기를 권유한다. 그럼에도 일부 요양시설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완전 비닐로 포장된 채 만나 비닐포옹과 비닐뽀뽀를 하며 헤어지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TV를 통해 보여준다. ‘효’라는 개념도 없는 나라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우리보다 진한 것 같아 숙연해진다. 개인의 이성과 책임 그리고 자발성에 기초한 정부의 코로나 대응 전략이 실패했다는 비판 사설과 토론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12월의 이 어둠과 역병으로 인한 상실을 스톡홀름에 사는 우리는 촛불로 몰아내려고 애쓴다. 성탄절이 4주 남짓 남은 일요일부터 정원 나무에 별빛 같은 조그만 전등으로 장식을 하고 집안에는 창문마다 7개 촛불전등을 밝히거나 큰 별 전등을 걸어 별이 내려앉게 했다.
이 빛 장식의 절정에는 강림절 촛대가 있다. 강림절 촛대는 살아있는 4개의 초를 꽂고 촛대 받침 부분을 연한 연두색의 둥근 실타래 같은 모사(mossa)와 링곤(lingon)으로 장식한 것이다.
모사는 이끼의 한 종류로 스웨덴 북쪽의 순록이 한겨울에 눈 속 깊이 묻혀 있는 것을 앞발로 파내어 먹는 겨울 양식이기도 하다. 스웨덴 숲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이끼다. 그리고 자그만 초록 잎의 빨간 열매 링곤은 야생 베리로 늦가을 스웨덴 숲을 빨간 점으로 수놓는다. 잼을 만들면 새콤한 맛이 나는 건강식품이 된다.
강림절 촛대를 이렇게 모사와 링곤으로 장식하고 첫 초에 불을 밝힐 때 아이들은 신기한 듯 둘러 앉아 구경을 하거나 서로 성냥불을 켜려고 난리를 친다. 그러면 어른들은 순서를 정해주고 성냥 켜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성냥불을 켜서 불을 붙인다. 이렇게 매주 일요일 하나씩 촛불을 붙여 마침내 네 개의 초 모두 불을 붙이면 성탄절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집안에 들여 장식하고 아이들 줄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쌓아둔다. 호기심에 찬 아이들은 선물 상자를 흔들어보며 자기 이름이 적힌 선물을 산타할아버지가 앉을 자리 제일 가까운 곳에 둔다.
필자는 이 강림절 촛대를 ‘기다림촛대’라 부른다. 선물 듬뿍 받는 성탄절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들이 이 4개의 촛대에 고스란히 녹여 내렸다는 생각에서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이 한 달 동안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다. 창밖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집안엔 벽난로에서 자작나무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날 때 아이들은 이 촛대 주위에 둘러 앉아 성탄절이 며칠 남았는지 서로 옳다며 손꼽아 센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과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코와 뺨에 밀가루를 묻히고 반죽을 몰래 뜯어먹으며 성탄절 빵(lussekatter)을 굽고 또 소파에 누워서 아이들을 배 위에 얹거나 팔베개 하여 번갈아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빵 냄새를 맡고 찾아온 새들이 창틀에 앉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옛날 얘기를 들으러 산에서 내려온 노루가 창가에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이렇게 북유럽의 아이들과 어른들은 이 기다림촛대에 불을 하나씩 밝혀 어둠을 물리치며 성탄절을 기다린다. 꼭 옛날에 우리가 시골에서 설날을 손꼽아 기다리듯이.
사람이 죽어나가고 생활터전을 잃고 가족 간에도 감염이 두려워 가까이하지 못하는 이 잔인하고 암울한 12월, 스톡홀름에서 국제신문 독자 여러분께 마음의 촛불을 보내드립니다. 부디 이 어둠과 상실을 이겨내시길 기원합니다.
前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스톡홀름대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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