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신문에 글을 쓸 때, 실생활과 거리가 있는 전문적 용어나 논리는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많은 독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필자 스스로의 단속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는 업계의 전문 용어 두 개를 사용하여 필자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미국 유학시절 미국법을 공부하면서 상당히 흥미롭고 애착이 가는 두 개념을 발견했다. de facto(디팩토우)와 de jure(디져리)이다. 미국법에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라틴어식 철자를 쓰는 용어들이 많다. 서양법의 기원이 로마법에 있다는 역사적 증거이며,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인간의 언어와 그 언어로 만들어진 그릇에 담겨있는 의미들은 영속한다는, 법의 중요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용어들이다. 두 개념은 필자의 지적 만족도를 일부 채워 주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만의 원인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두 개념이 학문의 영역이 구분됨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들을 목격했고, 그렇다 보니 내 마음껏 사용하기가 껄끄러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de facto와 de jure가 법 용어이니 그 법적 의미가 두 개념의 이해에 대한 출발점이 된다. 법학에서 de facto는 ‘사실의, 사실적인’의 의미이고, de jure는 ‘규범의, 법적인’의 뜻이다. 법학을 접해보지 않은 분들께는 생소한 얘기일 수 있는데, 법학에서 ‘사실행위’와 ‘법률행위’는 반대의 개념이다. ‘보통’의 반대말이 ‘곱빼기’일 수 있는 것처럼, 업계마다 언어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법률행위는 권리와 의무의 변동을 의미하는 법률효과를 가져오는 반면에 사실행위는 그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반대의 개념이다. 법률혼과 사실혼의 차이를 보면 그 의미가 더 다가올 것이다. 법률혼은 혼인신고를 해서 법이 인정한 부부관계이고, 사실혼은 그렇지 않은 부부관계이다. 사실혼이라고 해서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혼을 영어로 번역하면 de facto marriage가 된다.

그런데 법률혼 관계라고 해서 원만한 부부관계라고 단정 지을 수 없고, 사실혼 관계라고 해서 문제가 있는 부부관계라 할 수 없다. 법률혼은 형식일 뿐이고 사실혼이 내용일 수 있다. 정치학과 사회학에서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두 개념의 의미에 변화가 온다. de jure는 법은 있는데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의미하고, de facto는 그러한 de jure 상태와 맞물려 법보다 우선하는 사실관계를 인정해야 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된다. 법 보다 주먹이 앞서는 상황도 한 예일 수 있지만, 좀 더 점잖게 예를 들자면 기존 법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를 반영하지 못해서 그 효력이 떨어지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된다. 또는 특정 집단만의 이익을 위해 법이 만들어지고 다수 사회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법이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된다. 필자가 2020년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시기에 de facto와 de jure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런 상상이 상상으로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180개의 의석을 획득한 집권여당은 지금 무한질주를 하고 있다. 여야합의로 만들었던 브레이크 장치들을 단독처리로 제거하면서 달리고 있다. TV를 통해 보게 되는 여당 의원들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속도감을 즐기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이 개혁질주가 언제 어떻게 멈출 것인가에 대해서 대통령은 알고 있을까? 부동산규제의 종착지가 어딘지 아무도 얘기하지 못한다. 일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부동산 국유화인가? 끊임없이 외쳐대는 검찰개혁의 내용이 이제는 뭔지도 모르겠다. 윤석열 총장과 소위 그 사단을 검찰조직에서 쫓아내면 되는 건가? 결국 제도개혁이 아니라 토사구팽식 인적 쇄신이 그 목적이었나?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대형사고로 이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통령을 포함한 집권여당의 법률가들이 de jure와 de facto의 위험성을 인식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